개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다. 1973년 은막에서 은퇴하여 동물보호운동에 뛰어들었을 때 광신도 같은 동물애호가로 변했다.

그녀가 한국인들에게 욕을 먹은 것은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타깃으로 삼을 때였다.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으니 야만스럽다는 말은 프랑스 전역에까지 한국인을 경멸하게 만들었다. 인도에서 신성시 하는 소를 잡아먹어도 다른 나라에서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프랑스인이 비둘기 요리를 먹어도 마찬가지다. 개와 소와 비둘기가 무엇이 다른가. 동물애호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똑같은 동물이며 생명이다.

그런데 브리짓 바르도만이 한국인의 개고기 문화를 타깃으로 삼은 것은 문화적 우월주의에서 나온 심리로밖에 볼 수 없다.

브리짓 바르도는 한국인의 개고기 식용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한때 유행하였던 개 도살에 대해서도 비판을 했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개 도살 방법은 잔인했다. 개를 나뭇가지에 묶어 놓고 몽둥이로 쳐서 축 늘어지면 그 밑에 장작불을 피워 익혀 먹었다. 나도 가끔 그 당시의 장면이 끔찍하게 떠오르는데 동물애호가인 브리짓 바로도는 어떠했을까. 그녀가 개 도살 반대 캠페인을 벌인 것도 이해가 간다.

김기덕의 영화 `수취인 불명`에도 개 도살의 잔인성에 대해 비판을 하지만 지금은 그 방법이 사라졌다. 그러나 개고기를 먹을 때는 끔찍한 도살 장면이 생각나 꺼리지만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주로 들깨 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영양탕은 별미다. 육질이 졸깃하고 구수해서 보신용으로 즐기는 편이다.

개는 한평생 주인을 위해 희생하다 가지만 애완견은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같은 동물이지만 이렇게 처지가 다를까. 현재 애완견의 숫자는 증가 추세이고, 가족 같은 반려동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인형 같은 옷에 미용실 출입에 동물병원에서 정기적인 검진까지 시켜주는 입장이니 이 정도면 웬만한 사람보다 더 후한 대접을 받는다. 시어머니와 애완견이 함께 가출을 했는데 시어머니는 찾지 않고 애완견을 찾아다니는 세태가 과연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애완견이 산책을 할 때 늙은 아비는 뒷방에서 집을 지키는 세상이다. 애완견이 가족들과 한 이불 속에서 잘 때 늙은 어미는 외딴 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세상이다. 이게 과연 정상적일까.

언젠가 애완견을 끌어안고 개고기 수육을 먹는 사람을 보았다. 내가 궁금한 것이 있다. 개고기를 즐기고 애완견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개를 사랑하는가? 유진택 시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