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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상도례' 악용 아내 재산 빼돌린 30대 남성 처벌 어려워

2017-08-14기사 편집 2017-08-14 18: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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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남이냐고요? 아내 상대로 사기를 친 남편은 남보다 못합니다."

전 남편이 대전 지역 대학 교수로 임용되자 서울에서 내려온 유모(42·여) 씨는 계속되는 가정폭력에 어렵게 이혼을 했지만 곧바로 또 다른 곤경에 빠졌다.

이혼 후 의지할 곳이 필요해 찾은 인터넷 랜덤채팅 어플에서 만난 A(35)씨는 유씨를 만나기 위해 경기 용인에서 대전으로 오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둘은 2개월만에 결혼했다. 하지만 A씨의 접근은 유 씨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였다. A씨는 "자동차 대부업 자금이 모자란다. 돈을 빌려주면 이자까지 쳐서 6개월 후에 갚겠다"며 직접 각서까지 작성하고 유씨에게 약 5억 원을 빌렸지만, A씨는 자동차 운전면허조차 없는 사기꾼이었다. 알고보니 결혼 전 다른 여성들을 속이고 약 35억 원을 빼돌려 3년 6개월간 수감된 전력도 있었다.

A씨는 교도소에서 나온 직후 유씨를 만나 전 남편에게 받은 양육비를 포함한 유씨의 재산을 모두 빼돌렸다. A씨는 유씨와의 결혼생활 중에도 일을 핑계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른 여성들을 만나 "곧 이혼할 것"이라고 꼬드겨 받은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유씨는 A씨와 이혼하고 빌려준 돈을 돌려 받으려 했지만, 새출발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형법의 '친족상도례'규정 때문이었다.

친족상도례란 유달리 보수적 색채가 강한 우리 형법에만 존재하는 특례로,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법언에 따라 친족 간 재산범죄는 처벌을 면제하는 조항이다.

빌린 돈을 금방 갚겠다며 A씨가 직접 쓴 각서도 효력이 없었다. 둘은 법적으로 부부관계였기 때문이다. 상습적으로 사기를 일삼아온 A씨는 형법의 친족상도례 규정을 알고 악용했던 것이다.

이 규정이 생겨난 배경은 가족끼리는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하거나 나눠 쓰는 것을 당연시하는 전통문화의 영향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피해액의 규모가 크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재산죄 중 흉악한 강도죄, 손괴죄를 제외하고는 모두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돼 형이 면제된다.

이 같은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네 돈'식의 규정이 도리어 사기범의 방패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가족의 형태와 의미가 달라진 요즘 친족 사이의 범죄는 처벌이 전무하거나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고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져 이를 악용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유씨의 변호를 맡은 강승기 변호사는 "혼인신고를 한 번 하면 취소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친족상도례 규정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친족관계라는 특수한 신분관계로 인해 처벌되지 않을 뿐 명백한 범죄다. 법의 일부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유씨는 친족상도례 법을 악용하는 것을 막고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위헌청구소송을 준비중이다. 조수연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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