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아, 금빛 날개를 타고 날아가라! 부드럽고 따뜻한 그곳. 달콤한 향기로 가득한 우리 조국의 비탈과 언덕으로 가서 머물러라. 요단강의 강둑과 시온의 무너진 탑들에 안부를 전하라. 잃어버린 사랑하는 조국이여!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3부 시작과 함께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빼앗긴 조국을 그리워하는 합창이다. 1842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한 이래 이탈리아 국민에게 `제2의 애국가`가 되어버린 바로 그 노래다.

1848년 파리에서 시작된 2월 혁명은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드레스덴에서는 바그너가 직접 가담했고 정신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슈만조차도 `4개의 행진곡`을 작곡해 음악으로 힘을 보탰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는 3월 23일 밀라노를 중심으로 독립전쟁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1815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국가부흥운동`(Risorgimento)은 절정에 달했다.

당시 마멜리가 작곡한 애국가와 함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독립운동가로 어디서나 불려졌다. 베르디는 4월 5일 파리에서 밀라노로 급거 귀국해 독립군의 사기를 높였다. `산 마르코 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꾼 베네치아 혁명군 소속으로 전투를 하고 있던 자신의 대본작가 피아베에게 편지를 써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1차 독립전쟁은 7월 25일 쿠스토차 전투에서 라데츠키 장군이 이끄는 오스트리아 제국 군대에 패해 막을 내렸다. 8월 31일 빈으로 돌아온 라데츠키 휘하의 군대는 빈 성벽 앞에서 요한 쉬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 연주를 들으며 승리를 만끽했다.

베르디는 땅을 치며 통탄했다. 결국 1871년 이탈리아는 통일되었고 샤르데나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초대 국왕 자리에 올랐다. 독립운동 기간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비바 베르디`를 외쳤다. `이탈리아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만세`(Viva Vittorio Emanuele Re D`Italia)를 베르디를 이용해 합법적으로 부른 것이다. 물론 베르디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영원한 앙코르 `라데츠키 행진곡`는 금기시된다. 마치 우리 광복절에 일본 국가가 연주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당연히 우리에게는 다분히 정치적인 `라데츠키 행진곡`보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정서적으로 더 어울린다. 유혁준 음악살롱 클라라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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