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세계

소멸세계
소멸세계
"우리는 아이를 낳기 위한 편리한 존재로서 서로를 인식하고 결혼이라는 계약을 했다. 하지만 남편은 단순히 정자를 제공하는 남이 아니었다. 우리가 시스템 속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안도감이 들었다."(95쪽)

소멸세계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아 보통의 인간을 그려낸 `편의점 인간`으로 지난해 일본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 무라타 사야카의 2015년작으로 이번에 번역돼 출간됐다.

무라타 시야카는 2003년 `수유(授乳)`로 제46회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일본에서 열 권의 작품을 출간한 중견작가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남성이 전쟁터로 징용되면서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든 `평행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서는 결혼을 프로그램에 원하는 조건을 넣으면 `매칭`시켜주는 상대와 하며 아이는 인공수정으로만 얻을 수 있다. 비 내리는 여름날 태어난 주인공 아마네는 초등학교 시절, 자신이 인공수정이 아니라 `남다른 방법`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엄마는 `교미`를 해서 자신을 낳은 건지, 자신의 진짜 본능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아마네는 사랑과 섹스에 몰두한다.

작품 초기부터 작가가 주제로 삼아온 것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한 의심이다. 특히 `성`과 `결혼`, `출산`, `가족` 등 이른바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 중에서 이 책은 `출산` 그리고 `가족`이라는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이 책에서 출산을 위한 교미는 이미 구시대적 산물이다. 그는 책에서의 `인공수정`은 `진화`를 의미한다고 전한다. 특정한 나이에 이르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 가족을 이룬다. 작가는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본능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더 이상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 책으로 보여준다. 강은선 기자

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살림/ 292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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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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