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전반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논쟁적인 정책 사안에 대한 `국민참여 방식`을 통해 해결이다. 국민주권을 주창한 촛불민심에 의해 탄생하고, 참여민주주의를 주창했던 노무현 정권의 후예답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공론화위원회(공론위)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국민참여를 주도할 공론위의 위상과 역할에 관해 말들이 많다. 정부는 공론위를 발족하면서 "공론위가 구성한 시민배심원단이 내리는 결정을 그대로 정책에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공론위는 자신들은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해 운영할 법적 지위에 있지 않고, 공론조사 방식을 통해 그 결과를 정부에 전달하는 자문기구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역할에 대한 기대와 국민의견 수렴 방식에 차이가 크다.

또 하나의 사례는 국민참여 개헌이다. 국회를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번 개헌을 `국민이 참여하는 첫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개헌특위는 8월 하순부터 개헌 관련 국민의견 수렴을 위해 국민대토론회, 타운미팅, 설문조사, TV토론회 등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각 프로그램들의 목적과 프로그램 상호 관계가 불문명하다. 이런 개별화된 프로그램들로 국민의 뜻이 제대로 모아 질지, 그 내용이 헌법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 지 자못 걱정된다.

국민참여(public participation)는 `공적인 일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국민의 요구이고,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이를 잘 활용하면 `약`이 될 수 있다. 정부와 국회에 대한 불신이 높은 우리의 경우, 대의제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고, 국민의 민주주의 역량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국민으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정책에 대한 국민적 수용성을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 쓰면 독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 욕구와 불만이 무질서하게 분출되면서 갈등은 심화되고 사회는 더 큰 분열과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문제는 국민참여 자체가 아니라, 이를 관리하고 설계하는 정부의 역량이다.

정부는 해당 사안에 `국민참여` 방식이 적합한지 먼저 숙고해야 한다. 모든 판단을 국민에게 맡길 수는 없다. 대통령 등 국가 최고 지도자가 리더쉽을 발휘하여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할 일도 있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결정해야 할 일도 있다. 또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시민으로부터 자문을 얻은 수준으로 끝내야 할 일도 있다. 국민 일반의 의견이 대통령, 국회, 전문가 의견보다 우월하다는 도그마는 설득력이 없다. 사안의 성격에 따라 선택해야 할 문제다.

두 번째는 `국민참여`를 통해 얻고자 하는 정책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목표에 맞는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국민참여의 목표가 단순한 알림인지,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인지, 국민으로부터 체계화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인지, 국민을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고 그 책임을 정부와 국민이 함께 나누기 위한 것인지 정책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정책 목표가 정해지면, 이를 실현한 정확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참여(參與)의 범위, 숙의(熟議) 정도, 의사결정(意思決定) 여부, 결과에 대한 수용성(受容性)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런 판단과 선택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면 신고리 5,6호기 공론위 관련 논쟁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국민의견 수렴 과정이라고 설계한 개헌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이 제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확인해둘 일이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제도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헌법 72조의 대통령에 의한 국민투표를 제외하고는 국가정책 결정의 최종 주체는 여전히 정부다. 국민참여 수준이 어떠하든 대의민주주의를 골간으로 하는 우리의 경우, 의사결정의 최종 주체는 정부일 수밖에 없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 역시 정부가 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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