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 지역 캄보디아 여행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북쪽 씨엠립에 위치한 감동여행지 앙코르와트이다.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9세기 초 자야바르만 2세(재위 802-834)로부터 시작해 12-13세기 최고 전성기를 누리며 600여 년이나 존속한 크메르 왕국의 황성 옛터다. 천년 이상 갈 것 같던 크메르 왕국도 1431년 동쪽으로 국경을 접하는 타이 샴족에 의해 멸망해 왕국은 철저하게 파괴됐고, 유적은 열대 밀림 속에 오랜 세월 방치돼 있었다. 그러다 1860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가 밀림 속에서 이를 발견하면서 베일에 싸인 화려한 자태를 드러냈다. 그 후에도 캄보디아 내전으로 20여 년 동안 일반인의 접근이 일절 금지되다가 지난 1993년 이후에야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열대 우림에 둘러싸인 앙코르 와트는 크메르적인 신의 세계를 지상에 구현하려고 한 장대한 가람(伽藍)이다. 신이 바로 현세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크메르 왕국에서 왕은 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졌다. 왕은 신의 화신으로서 육체를 가진 하늘과 땅의 중개자로 인식돼 신왕이 죽으면, 그 본존을 모셨던 사원은 능으로 되고, 그 곳은 후계자들이 대대로 의례를 올리는 장소로 삼았다. 그리고 새 왕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사원을 새롭게 건설했다. 앙코르 유적지는 바로 그 역사의 흔적이다.

오늘날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앙코르 유적지의 규모는 실로 대단해 제대로 둘러보려면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 참고로 앙코르 유적지 입장권도 1·2·3일짜리로 구분해 판매한다.

앙코르 문화유적의 백미 단연 앙코르와트다. `사원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이곳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예전에 말로만 듣던 그 웅장함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크메르 왕조의 전성기인 12세기 전반 수라야바르만 2세(1113-1150)에 의해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매머드 사원은 7톤짜리 돌기둥 1800여 개가 투입돼 지어졌다고 한다. 이들 돌기둥은 무려 60㎞ 떨어진 곳에서 채취해 운하를 통해 선박으로 운반해 와 대형 석조물에는 보다 수월한 운반을 위해 뚫었던 구멍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당시 통치자의 사후를 예비한 영묘(靈墓)로 지어지다 보니 사원 출입구가 일반 사찰들과는 달리 해가 지는 서향으로 나있다. 앙코르와트 관람의 하이라이트는 사원 1층 회랑의 길이 750m(높이 2.85m, 총 면적 2000㎡)에 이르는 벽면에 매우 얕은 양각(陽刻)모양으로 여백 없이 빽빽하게 새겨 넣은 부조(浮彫)다. 힌두교 신화(神話)와 앙코르 제국의 승전에 관한 기록을 담은 화랑 벽의 부조는 정교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앙코르와트 유적지 일대의 파노라마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유적지 안에서 출발하는 열기구를 타고 공중에 올라서 보면 좋다. 지상에서 100m 정도 기구를 타고 오르면 앙코르와트가 마치 미니어처처럼 작게 보이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밀림의 웅장함에 감탄사가 나온다. 공중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평야지대가 끝없이 펼쳐지는데 어디서 엄청난 돌덩어리를 유적지까지 운반해 장엄한 건축물을 만들었는지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이 든다.

앙코르와트 관람의 백미는 새벽녘에 와트의 탑문을 지나 좌측 연못과 예전에 도서관으로 이용됐다는 건물에서 즐기는 장엄한 해돋이 장면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붉게 물든 하늘과 밀림 속에서 신비로운 자태를 맘껏 드러내는 앙코르와트의 일출은 너무 아름다워 아무 생각 없이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감동의 순간이요 찰나다.

유적지 관람 시 주의할 사항은 인간이 아닌 신이 이용하도록 무척 가파른 70도의 경사로 만들어진 앙코르와트의 40개의 계단을 오르려면 최대한 몸을 낮추는 등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심장이 약하거나 연로한 경우 계단을 오르려 해서는 안 된다. 신수근<자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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