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부(神父)가 된 후 선배 신부님들께서 스님과 친하게 지내시는 것을 몇 번 보았다. 어떤 신부님께서는 군대에서 만난 스님과 친구처럼 지내시기도 하셨고, 어떤 신부님께서는 부처님 오신 날과 부활절 때 서로 왕래를 하시다가 친해져서 형님, 동생하며 지내기시도 하셨다. 나도 몇 번 스님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 계신 스님과의 만남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노라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선배 신부님이나 동료 신부와 대화를 하고 있는 듯 착각을 하고는 하였다.

한 번은 눈썹이 하얀 노스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스님께서는 연세 드신 신부님들만 보시다가 젊은 신부가 신기하셨는지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셨다. 나도 그동안 궁금했던 것이 있어 스님께 몇 가지 여쭈어보았다. "스님, 스님들은 왜 회색 옷을 입어요?" 노스님께서 엷은 미소를 띠며 대답하셨다. "이거? 승복이라고 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나신 다음에 시체가 입는 수의(壽衣)를 입으셨는데, 그 색이 회색이라 우리도 회색 옷을 입는 거야." 노스님과 대화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입은 클러지 셔츠와 스님들이 입으시는 승복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천주교 신부들이 입는 웃옷을 클러지 셔츠(clergy shirt)라고 한다. 클러지 셔츠는 검은색인데 흰색의 독특한 칼라를 한다. 이 흰색의 칼라는 로마 가톨릭 신부들만이 하는 칼라라고 해서 로만 칼라(Roman collar)라고 한다. 클러지 셔츠의 검은색 바탕은 나와 세상에 대한 죽음을 상징하고, 흰색의 로만 칼라는 이러한 죽음 통한 예수님 안에서의 부활한 새 생명을 상징한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나신 다음, 가장 생명이 충만하실 때 수의를 입으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내가 만난 예수님의 모습을 그 안에서 본다. 우리의 삶에 크게 상승 곡선을 그리는 삶과 하강 곡선을 그리는 두 삶이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하강 곡선을 그리는 삶을 선택하여 사셨다. 하느님이셨던 그분은 사람이 되셨다. 그것도 왕족이나 귀족 가문이 아닌 갈릴래아의 작은 마을 나자렛의 목수 요셉과 시골 처녀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나셨다. 그리고 그분은 30년이라는 당신 삶의 대부분을 나자렛에서 목수 일을 하시며 침묵 속에 사신다. 예수님께서는 단 3년 동안 복음 선포 활동을 하셨는데, 이 삶의 요약이자 절정이 바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온전히 비우시며 희생 재물이 되셨다. 깨달음과 생명과 구원의 길로 간다는 것은 자신을 끊임없이 비우고 희생해 나가는 하강 곡선의 삶일 것이다. 우리는 하강을 통해서 참된 상승(깨달음, 부활)을 체험하게 되고,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전해 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유려(流麗)하고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은 당신의 힘과 능력을 뽐내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기적은 자신을 비우고 희생하여 위축되고 낙담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활동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요한 8,11) 하느님의 사람은 내가 그 앞에 서면 한 없이 편해지고 자유로워지는 사람, 내가 아무리 부족해도 나의 소중함과 가치를 일깨워주는 사람이다. 오히려 그는 내가 함부로 말하고 대할 수 있는 사람에 가깝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우리 주변에는 원치 않는 하강 곡선을 그리며 하느님의 축복이자 선물인 자신의 생명마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상승이 아닌 하강의 삶을 동경할 때 그들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쓰러져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한 14,6)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우리의 길, 진리, 생명(요한 14,6)은 바로 상승 곡선이 아닌 하강 곡선에 있다. 오창호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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