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싶을 때

내 몸엔 가시가 돋아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은빛 가시가 돋아나

나를 찌르고 내가 껴안는 사람을 찌른다

가시 돋친 혀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핥고

가시 돋친 손으로 부드럽게 가슴을 쓰다듬는 것은

그녀의 온몸에 피의 문신을 새기는 일

가시에 둘러싸인 나는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이

다만 죽이며 죽어간다

이 참혹한 사랑 속에서

사랑의 외침 속에서 내 몸의 가시는 단련되고

가시 끝에 맺힌 핏방울은 더욱 선연해진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저 반란의 가시들

목마른 입을 기울여 샘을 찾을 때

가시는 더욱 예리해진다 가시가 사랑하는 이의

살갗을 찢고 끝내 그녀의 심장을 꿰뚫을 때

거세게 폭발하는 태양의 흑점들

몸 대신 밤거리를 휩쓸 것이다

위대한 사랑은 언제나 역설을 동반한다. 사랑은 우리 생을 압축한 결정. 그만큼 사랑은 어렵고 진중한 가치라는 것. 그건 그처럼 절대적인 것. 때로는 해석이 불가능하기도 하지. 또한 사랑만큼 무목적인 것도 없다. 그러한 사랑의 속성을 매개하는 이미지로 가시가 자주 등장한다. 가시고기 사랑도 고슴도치 사랑도 거기 있다. 어느 날 보았던 가시고기의 부성은 완벽했다. 어미로부터 넘겨받은 알을 8일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보호하고 지느러미 부채로 일구어 부화시키는 놀라움. 그리고 생을 다 하면 자신의 살을 새끼에게 뜯어 먹히고 가시로 남는 최후. 그러니 사랑의 최종은 가시가 아닌가. 앙상한 겨울나무 뼈대처럼. 그러나 봄이 오면 줄기마다 새잎을 다는 나뭇가지와 다르게. 모든 사랑을 남김없이 주고 사라지는 완벽한 시나리오.

그만큼 어려운 사랑은 가시로 서로를 찌르는 고통을 넘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생과 사랑의 종국은 소멸. 그런 즉 완성이 곧 소멸이고 소멸이 곧 완성인 셈. 그건 절대 죽음이라 말할 수 없다. 사라진다 말할 수 없는 것. 우주 속에는 그러한 사랑이 떠돌아다니며 빛을 낸다. 저 은하의 수많은 빛들도 결국 지상의 끝난 사랑이 새로운 빛으로 솟구친 게 아닌가.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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