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진의 시네마 수프]

뱃속의 태아의 모습에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태아는 엄마 아빠가 침대에 누워 나누는 사랑의 대화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녘 잠에서 깬 아빠는 무언가 잘못된 것을 직감하고 이불을 걷어 올립니다. 침대는 엄마가 흘린 피로 흥건합니다. 엄마는 병원으로 실려 가고 결국 아기를 잃게 됩니다. 아기를 갖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해온 엄마 마리아는 지난 10년간 여덟 번의 유산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유산에서는 2분간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마리아에게 의사는 더 이상의 시술을 만류하며, 그간의 무리한 시술과 환자의 나이를 감안하여 이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선고를 내립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절박하게 아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죽은 자신의 아이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사실 마리아는 유산의 순간부터 이미 아기가 노력해줘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계속해서 마리아에게 속삭입니다.

큰 운송기업의 중역으로 탄탄한 사회적 지위와 넉넉한 부를 갖고 있는 마리아는 아기가 없는 삶은 미완의 삶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아내를 잃을 뻔했던 남편 피터는 아이가 없는 삶을 마리아가 받아들이기를 강하게 주장합니다. 결국 부부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던 중 마리아는 업무와 관련된 일로 국경 지역의 불법 매춘 증가에 대한 대책으로 회사의 운송 노선의 변경을 요청 받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같은 지역 어린 매춘부들과 인신매매집단 사이에 아기 매매가 빈번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마리아. 마리아의 죽은 아이가 마리아에게 속삭입니다. "엄마가 그 아기들을 구해줘요."

자녀가 있는 삶과 자녀가 없는 삶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왜 자녀를 원하는 것일까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주 공유된 외국의 한 광고 영상이 있었습니다. 아기들이 태어나고 아기의 팔에는 바코드가 새겨져 있습니다. 젊은 성인 여성으로 성장한 아기들은 일과 사랑의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팔에 세겨진 유통기한에 의해 한계와 절망을 맞닥뜨립니다. 필자도 젊은 시절 출산이라는 것이 시간 안에 써내야 하는 답안지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었으니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출산의 욕구는 인간의 본능 중에 하나일 텐데요. 임신에 대한 강한 욕구의 한 면으로 상상임신을 생각해 봅니다. 이미 기원전 300년 전 히포크라테스의 기록에서도 나온다는 상상임신은 동물들에게서도 자주 목격된다고 합니다. 개, 고양이 심지어 햄스터 같은 애완동물들에게서도 종종 보인다고 합니다. 남성의 경우에는 아내의 임신 증상 더 나아가서는 진통까지 함께 하는 증상을 보이는 쿠바드 증후군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나 버거운 출산, 이렇게나 절박한 출산입니다.

한국의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찍고 전 세계 225개국 중에서도 220위로 세계에서 아기를 가장 적게 낳는 나라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물론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요. 교육비를 비롯한 자녀 양육비용, 만혼 혹은 비혼의 증가, 또는 요즘 들어 자주 거론되는 `독박육아` 등 말입니다. 동시에 한국 아동의 `주관적 행복지수`도 OECD 22개국 중 20위로 낮다고 하니, 아기들의 입장에서도 출생 후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상황이다 보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만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본능적인 욕구를 대체하는 다른 수많은 욕망들 때문일까요? 어쩌면 출산의 욕구는 최첨단 IT 강국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 미개한 동물적 본능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사회가 진화하여 다양한 삶의 방식이 늘어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연스러운 욕구가 좌절되고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기형적 사회로의 성장일까요?

반면 난임 진단자가 연간 20만 명을 넘어서고 있고 난임부부가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라는 소식도 듣게 됩니다. 한국 사람들은 수면시간도 OECD 국가 중에 최하위로 적게 잔다고 합니다. 안 자고, 안 낳고, 안 행복하다는 이 사회를 진단하는 다양한 수치들이 점점 더 과거의 공상과학 속에나 묘사되던 희한한 세상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극동대 미디어영상제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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