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 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어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 주면

천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어 봅니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어 시인을 세상에 더 널리 알려준 시. 시인이 이 시를 쓰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히 일러준 적이 있다. 경주 박물관에 세 번이나 찾아갔다고 한다. 처음 웃는 기와를 본 이후 필이 꽂혀 시상을 가다듬고. 그리고 두 번이나 더 내려갔다고. 세 번째 갔을 때 웃는 기와가 들어있는 유리상자 앞에 어느 소년이 그 웃음을 따라 웃어보는 표정을 목격하고. 마침내 그리고 드디어 이 시는 완성되었노라고. 시인이 대전에서 경주까지 세 번 오르내리는 순간을 회상해본다. 그의 뇌리에는 강렬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또 그의 가슴에는 깨진 기와 한쪽을 뜨겁게 품었을 것이다.

시인의 눈은 어디까지 닿아야 하는가. 또 시인은 언제까지 살펴야 하나. 즉물적 상상력. 구체적 대상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통해 상상력을 발동시켜 한편의 사를 완성하였다. 그렇다. 웃음 한 자락이 신라시대 어느 장인의 손길로 기와에 새겨져 천년을 넘어 열렸다. 한번 웃음도 절대 시들지 않고 꽃피어 우리를 벙글게 하느니. 그래 그렇게. 사람은 기와를 낳고 기와는 웃음을 낳고 또 그 기와는 시인을 깨워 시를 낳았다. 그러니 그대여, 흘러가는 구름과 나뭇잎 앞이라도 찡그리지 말라.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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