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의 성격은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규정된다. 입지 여건에 따라 내륙 도시·항구 도시·강변 도시·호반 도시·산악 도시 등으로 나눌 수 있고, 그 기능에 따라 행정 도시·기업 도시·과학 도시·군사 도시·탄광 도시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물론 하나의 도시는 그 성격이 매우 복합적인 것이어서 이러한 명명법에 의해 한두 가지의 배타적인 이름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서울은 내륙 도시이지만 강변 도시의 성격도 지니면서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행정 도시이자 대기업의 본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기업 도시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조선 500년과 그 이후의 한국 문화 중심지로서 문화 도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부산이나 인천, 대구, 광주, 대전, 세종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 이러한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다.

그런데 대도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소도시들까지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명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문화 도시이다. 우리나라의 도시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도시들까지도 대부분 `문화가 살아있는 도시`라는 이름을 앞세우곤 한다. 어느 도시는 `문화수도`라는 이름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는 동서고금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문화적으로 품격 있는 공간이기를 원한다는 증거이다.

대부분의 도시들이 문화를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가 그만큼 인간의 삶의 질과 직접 연관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도시의 수준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 역시 문화적 역량이다. 특정 도시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인지 아닌지는 그 정치적 집중도나 경제력, 지리적 규모의 크기보다도 문화적 역량이기 때문이다.

한 도시가 지닌 문화적 역량은 다른 말로 바꾸면 문화 도시의 조건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조건은 여러 가지 세부적인 것들을 말할 수 있을 테지만, 그 기본이 되는 것은 과거의 훌륭한 문화유산, 현재의 문화 활성화, 미래의 문화적 가능성 등의 세 가지 차원이 충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들 조건을 대전에 빗대어 살펴본다면 문화 도시로서의 대전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첫째, 대전은 과거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있었고, 그 유산들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대전의 문화유산은 행정적인 범주로서의 대전광역시뿐만 아니라 충청도 지역, 특히 충청남도에 산재한 백제 문화나 불교 문화, 유교 문화를 포괄하는 것이다. 공주와 부여 지역의 백제 문화유산은 공주박물관, 부여박물관, 대전역사박물관 등에 비교적 온전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둘째, 현재의 상황에서 문화가 적절히 활성화되고 있는지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다. 대전이나 충청 지역에 산재한 문화유산의 현대적 활용, 지역민과의 소통 등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전의 문화 정책이나 생산, 향유와 관련해서는 대전문화재단의 역할이 아주 소중할 터인데, 아직 독립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대전문화재단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대전시로부터의 충분한 독립성, 생산의 수월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 문화 콘텐츠와의 연계 방안, 충남문화재단과의 네트워크 형성 등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도 대전문화재단이 원래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도록 대전시의 행정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대전시와의 관계에서 지원은 받되 간섭은 받지 않는 시스템을 확실하게 확보해야 한다.

셋째, 대전 문화의 미래는 현대의 문제적 국면들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전과 그 주변 지역의 다양한 문화유산들을 기반으로 온 시민들과 국민들, 세계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 이벤트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 사실 대전은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 이벤트가 빈약하다. 적어도 부산 국제영화제, 광주 비엔날레와 같이 대전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이벤트를 기획,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형권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