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86)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올해도 31억 7000만 달러(약 3조 6500억 원)를 기부했다. 그는 지난 2016년 "재산의 99%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한 이후 매년 보유 주식의 5%를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된 기부금은 275억 달러(약 31조 6000억 원)로, 이미 40%가 넘는 회사 지분을 양도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함께 "부자들이 자신의 재산 절반을 기부하자"는 기부 서약 운동을 펼치는 한편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멀린다가 운영하는 재단에 지금까지 219억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주,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 유명인사 120여 명도 기부 서약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세계 억만장자 순위 4위를 기록한 그에게 이 정도 규모의 기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일상생활에선 돈 쓰기에 인색하다. 10년 넘은 뿔테 안경과 20년 이상 된 캠리 자동차, 50년째 살고 있는 오마하의 작은 집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이발소에 가는 것조차 "내가 정말 이렇게 머리 한 번 깎는 데 30달러를 들여야 하나"고 말하며 아까워했다고 한다. 기부를 하면서도 금융 전문가답게 매년 기부되는 금액의 규모와 사용조건까지 복잡한 방식으로 일일이 명시했다.

미국인들의 부자에 대한 존경심은 뿌리 깊다. 악착같이 벌고 까다롭게 쓰지만, 번 돈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버핏처럼 자신의 이름이 담긴 자선재단에 위탁하는 방식이 많다. 사후(死後)에 자선재단이 활동을 활발히 하면 할수록 이름이 더욱 빛나고,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부자들 중 이런 존경을 받는 이는 흔치 않다.

국내에도 지난 2007년 아너 소사이어티가 등장하는 등 기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6명으로 시작한 회원 수가 어느덧 2000명을 향하고, 누적 기부액도 1억 6000만 달러(1800억 원)에 이르렀다. 2200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기부한 기업가도 있고, 세계공동모금회가 처음 설립한 초고액 기부클럽 `1000만 달러 라운드 테이블`에 이름을 올린 기업가도 있다. 남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한 기부를 행하는 기부자도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나눔의 리더십이 우리 사회와 기업의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2016년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한 `2016세계 기부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기부지수는 33%(100% 만점)로 전 세계 140개 조사대상국 중 75위다. 이는 지난해 64위보다 11계단 떨어진 순위로, 인도네시아 (7위), 부탄(18위), 이라크(31위) 등에도 밀린다.

반면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자 오랜 독재를 겪은 미얀마는 3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나눔을 즐기는 나라로 조사됐다. 미얀마의 1인당 GDP는 2017년 4월 기준 1269달러(약 140만원)로 우리나라 경제 규모의 20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기부 지수는 70%로 우리 나라의 두 배가 넘는다. 재벌들 뿐 아니라 평범한 국민들 사이에서도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있는 사람들` 조차 손에 쥔 것을 내어놓지 않는데, 서민들이 없는 주머니를 털어 남 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부자들이 먼저 워런 버핏의 격언을 생각해볼 때다. "내 주식의 1%를 나를 위해 쓴다고 해서 내가 더 행복해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나머지 99%는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태복 중고왕 대표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