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뭐야? /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거지.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지는 거야." "선거는? / 똥물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를 꺼낼 수 있겠어. `내가 늑대새끼다`라고 하면 모든 사람이 나를 늑대새끼라고 믿게끔 만드는 게 선거야." 가상의 서울시장 선거를 다룬 영화 `특별시민`(2017년 4월 개봉, 박인제 감독)의 한 장면이다.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한 투표로 국민을 대표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선거는 대표를 뽑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선거에서 표출된 국민의 요구에 따라 사회문제를 해결해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는 민주 정치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나오는 선거와 정치에 대한 정의다. 중학생들이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것에 고개는 끄덕여지지만, 허구인 영화의 한 장면이 더 살갑게 느껴지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정치와 선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치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며, 사회 구성원간 갈등을 조정하는 행위다. 정치인은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 또는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선거다. 즉, 선거는 정치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고 과정이기는 하나, 결코 동의어는 될 수 없다.

하지만 대선이후 청와대를 포함한 정치권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모습들은 정치와 선거를 동일시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니, 정치를 위해 선거를 치르는 게 아니라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치를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 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인사청문회와 추경, 증세 등에 대해 다양한 이유를 들어 반대하면서 `발목잡기`가 아님을 강변했지만, 새 정부의 협조 요청에 단 한 번이라도 긍정적 반응을 보인 적이 있는 지 기억에 없다. 타 야당에 대한 스텐스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홍준표 대표는 최근 교섭단체로까지 등록된 제2, 3 야당을 유령 대하듯 한다는 비판에 휩싸여 있다. 집권여당과 1대1 구도를 만들어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노리는 `정치 행보`로 오해(?)되기 충분하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만들어준 다당제의 취지를 살려 다양성을 발휘하기 보다, 생존을 위한 당리당략적 정치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장 큰 책임을 통감해야 할 주체는 집권여당인 민주당과 청와대다.`정의`라는 명분으로 야당을 향해 일방적인 협조를 요구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국민의당의 `문건조작` 사건에 대해 `머리 자르기`를 언급하고, 청와대가 캐비닛 문건을 연이어 공개하며 의미부여하는 것 역시 야당에 대한 `토끼몰이`로 비쳐질 수 있다. 설령 야권의 발목잡기와 반대로 인해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그 실타래를 풀어나갈 일차적인 책임은 헤게모니를 쥔 여당과 청와대에 있다. 특히 대통령은 국익과 국민 안전에 있어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다. 협치가 안돼 그 폐해를 국민들이 감수해야 한다면, 국정 책임자는 억울할지라도, 내키지 않을지라도, 이를 수습하는 데 방점을 찍는 게 맞다.

선거가 정의롭고 공정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라면 자신의 장점만을 널리 홍보하고, 경쟁자의 약점은 교묘히 부각시키는 전략과 전술이 용인되는 곳이 선거판이다.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갖췄다 해도 유권자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한다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게 정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는 명쾌하다.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게 정치의 첫 번째 의무이며, 보수나 진보를 떠나 국익을 지향해야 한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게 국민들로부터 선택된 정치인의 도리다.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따져 정치하는 것은 말 그대로 본말전도(本末顚倒)다. 중학생도 다 알고 있는 `선거에서 표출된 국민의 요구에 따라 사회문제를 해결해 사회통합을 이루는 게 민주 정치`라는 사실을 기성 정치인들은 왜 실천하지 않는 걸까.

송충원 서울지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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