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은 삼국 통일을 말하지 않았다

고조선 건국을 시작으로 5000년 우리 민족 역사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은 꽤 의미있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한민족 역사 속 최초의 민족 통일이자 나·당전쟁을 통해 우리 힘으로 외세를 몰아낸 자주성 확립의 순간으로 불린다. 어린시절 국사책으로 역사를 달달 외우며 배웠던 사람이라면 신라의 통일을 이처럼 기억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고고학으로 석사를 받고 문화재 기자를 통해 내공을 쌓은 저자는 참된 명제로만 보이는 이 사실에 반문을 던진다. 신라는 과연 삼국통일을 했을까? 이 질문에 저자는 신라와 고구려, 백제 사람들이 직접 남긴 각종 기록을 전수조사해서 대부분의 신라인들이 자신들은 삼국을 통일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논증한다.

한국사학계에도 소수이긴 하지만 신라의 삼국 통일을 부정하는 주장이 있다. 나·당전쟁 후 신라가 차지한 영역이 대동강-원산만 이남이고 신라가 차지하지 못한 옛 고구려 영토에는 발해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라의 삼국 통일을 부정하는 한국사학자들도 `신라인들이 삼국을 통일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에는 의문을 두지 않았다. 저자는 `신라인들의 통일관`을 살피기 위해 돌이나 토기 혹은 쇠붙이 등에 신라인이 직접 써서 남긴 모든 금석문, 원효나 최치원 등 신라인의 글을 모든 문집, 우리나라에 남은 고구려나 백제의 기록물은 물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를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우리가 믿어온 것이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다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

저자는 집필 동기를 두 가지로 소개한다. 첫째는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의문, 즉 고구려 영토를 신라가 통합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뤘다고 볼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싶었다고 한다. 둘째는 20년 가까이에 문화재 기자를 하면서 느낀 자괴감에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기자 초년병 시절 `우리 문화유산의 찬란함`, `우리의 빛나는 전통과학 기술` 등의 표현을 많이 썼지만 자료에 접근할 수록 한국 역사 중심으로 모든 역사가 돌아가는 듯한 인식에 혀를 차게 됐다. 저자는 근대화에 뒤늦어 외세 강점을 겪게 됐다는 열등감 때문에 외세 강점 이전의 역사에서 찬란함을 찾으려는 시도가 역사를 왜곡하는 미화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역사를 잊거나 비하해서는 안 되지만 미화나 과장을 해서도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일어난 일은 다시 겪을 수 없다. 역사의 해석은 그래서 어렵다. 세상과 정치의 이해관계 속 역사적 인물과 사건의 평가는 계속해서 달라지고 왜곡돼 퍼져나간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네 역사도 미화와 과장없이 객관적 기록으로 남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역사가 교훈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주예지 수습기자

신형준 지음/ 학고재/ 448쪽/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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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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