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이 한명회를 가리켜 `나의 장량`이라고 했을 정도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데는 그의 도움이 컸다. 한명회의 에니어그램 성격유형은 3번이며 별칭은 `성취자`이다. 그의 성격특성은 `허영`과 `명예`라는 격정으로 규정된다. 이 유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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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년에 태어난 한명회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불우한 성장 과정을 거쳤으며, 과거에도 여러 번 낙방하여 38세에 문음(門蔭)으로 겨우 경덕궁직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격유형의 격정에서 비롯되는 성취자로서의 욕망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불굴의 의지와 과단성을 지녔고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수양대군을 택군(擇君)함으로써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수양대군이 물질적인 우세함을 갈구하는 인물이었다면 한명회는 그의 욕망에 불을 붙이고 화력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았다. 과거를 통해서는 도저히 관직에 나아갈 수 없음을 간파한 한명회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힘있는 자를 등에 업고 변혁을 꾀하는 것이었다. 그는 친구 권람을 부추겨 수양대군과 거사를 논의케 했고 다시 권람의 천거로 수양대군의 책사가 되었다.

계유정란 때 자신의 무사들조차 거사에 동참하기를 꺼리자 다급해진 수양이 한명회에게 `대다수 사람이 불가하게 여기니, 장차 어떤 계교가 좋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한명회는 `길가에 집을 지으면 3년이 지나도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의논이 비록 통일되지 않더라도 그만둘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했다(이덕일, 2014). 수양대군은 그의 기지와 과단성을 이용하여 원하는 목표를 얻고자 했으며, 한명회가 아니었다면 울분에 가득찬 대군으로서 일생을 마쳤거나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정난 성공 후 한명회는 1등공신에 올랐고 좌부승지, 이조판서 등을 거쳐 1466년 영의정이 되었다. 일개 궁직에 있던 그가 불과 13년 만에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는 막강한 권력을 얻은 뒤에도 왕실을 비롯한 권신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분주했다. 그의 두 딸을 왕실에 출가시켜 예종, 성종 두 왕의 장인이 되었고 당대의 권세가들과도 정교한 관계를 맺어 그의 권력과 부를 담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세조 이래 성종조까지 공신들과 함께 주요 관직을 독점하며 절정의 권세를 누리던 그도 비록 사후이기는 하지만 연산군조에 갑자사화를 계기로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사건에 관여한 죄목으로 부관참시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3번 유형의 격정인 `허영`과 `명예`는 성취를 향한 욕망을 강하게 추동하여 어려운 환경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취를 이끌어내는 탁월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공 가도의 파렴치함이 업적을 뒤덮어버리는 사례가 드물지 않음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현상진 대전시민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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