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성기숙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기숙 교수
리 춤의 시조 한성준(1874-1941)의 업적을 발굴, 수집하여 학문적으로 연구해온 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90년대 초반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시절 전국의 전통무용가를 조사·연구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우리 춤의 `넓이와 깊이`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보는 절호의 기회였다. 전국 가는 곳마다 기라성 같은 예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한성준을 얘기했다. 오늘의 우리 춤은 모두 그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그 후 전통예인들을 찾아다니며 한성준 관련 내용을 증언채록하고 일제강점기 신문·잡지자료를 뒤졌다. 모아진 자료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한성준의 일대기를 복원하고 그의 존재론적 가치를 오늘에 되살렸다. 무용전문지에 한성준의 삶과 예술을 주제로 최초 연재했고 1998년 9월 문화부가 지정한 `이달의 문화인물-한성준` 공식책자의 집필을 맡는 영광도 누렸다. 그 외 세미나·포럼 등을 열어 한성준이 우리 무용역사의 소중한 자산임을 일깨웠다.

 결정적으로는 4년 전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을 창설하여 한성준 재발견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공연과 학술·기록 등 삼위일체를 지향하여 고품격의 행사로 키웠다. 그의 예술정신을 영구적으로 기리기 위해 한성준예술상도 제정했다. 한성준의 활동 궤적을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등을 현지촬영한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방점을 찍었다. 시대, 국가, 장르를 초월한 문화횡단적 시도로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했다는 찬사도 들었다. 지난 6월 12일, 한성준 생일을 기해 `한국 무용의 날`을 제정, 선포했다. 근대 여명기 국권상실의 위기에서 전통춤을 집대성하고 무대화하는데 업적을 남긴 한성준의 예술혼을 기리자는 취지였다.

 그의 춤 정신이 지구촌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매년 6월 12일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우리 춤이 추어질 것을 상상하니 절로 유쾌해진다. 우리에게 한성준은 어떤 존재인가. 우선 그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우리 춤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은 기념비적 인물이다. 그는 뜰이나 마당에서 추어졌던 춤을 서구식 극장 무대에 올려놓았다. 기층민의 놀이적 수준에 불과했던 춤을 고급화하여 예술로 승화시켰다. 한성준은 전통예인이면서 동시에 안무가이자 창작가였다. 근대 전통예능교육의 산실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약 100여 종의 전통춤을 집대성하고 후진양성에도 힘썼다. 특히 신무용가 최승희·조택원에게 우리 춤의 자양분을 제공하여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발판을 제공했다. 오늘날 한국의 춤은 모두 한성준의 우산 아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토록 한성준에게 집착하는가. 알다시피 한성준은 내포(內浦)가 낳은 위대한 춤꾼이다. 그의 춤을 인문지리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흥미로운 사실과 마주한다. 단아하고 정갈하며 넘침과 부족함이 없는 중도(中道)의 미, 바로 그것이다. 평평한 내포의 지형과 유사하며 어질고 온화한 내포사람들의 성정과도 닮아 있다. 손녀딸 한영숙 대(代)에 이르러 내포제 춤미학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러나 그의 사후(死後) 한성준-한영숙류 전통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제도권으로의 진입이 제한되어 침체일로에 놓여 있다. 한성준-한영숙류로 표상되는 내포제 전통춤의 정통성과 그 미학적 가치를 지키고자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이 탄생된 것이라 해도 과히 틀리지 않다.

 최근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이 화두다. 충청권은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 인프라가 열악한 편이다. 한성준이 근대 전통무악의 거장으로 칭송되지만 그를 기리는 기념관조차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우선 충남 예산군 덕산면 복당리의 한성준 유택을 복원하여 기념관으로 꾸미면 어떨까. 가까운 일본과 중국엔 노오, 가부키, 경극 등 자국의 전통예술을 담아내는 전문공연장이 존재한다. 각기 고유의 전통건축양식으로 지어져 부러움을 사고 있다. 내포에 국립한성준춤전용극장이 세워진다면 어떨까. 한국 고유의 전통건축양식으로 설계하여 내포신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한성준 춤의 유산을 보존 계승하고 창조적으로 자산화하는 극장공간이 된다면 더욱 금상첨화가 아닐까.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기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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