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G20 회의에서 돌아와서, 문재인 대통령은 약소국 지도자의 무력감을 토로했다. 중국과의 교섭에서 겪은 어려움이 충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는 현 정권이 전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중국에 호의적 태도를 보이면 중국이 보답하리라는 환상에 잡혀,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에 줄곧 비굴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북한의 후견인인 공산주의 중국을 먼저 방문하고 우방인 자유주의 일본을 끝내 찾지 않은 것은 실책이었다. 남중국해 분쟁에서 중국의 주장을 일축한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을 중국이 거부했을 때, 판결을 따르라고 중국에 권고한 미국과 일본의 성명에 동참하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중국 편을 든 것은 더욱 문제적이었다. 당연히, 중국은 신의 없는 한국을 아주 얕잡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문 대통령의 책임도 있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문제 삼은 것은 `트집을 위한 트집`이었다. 그러나 우리 군부가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국론이 분열되자, 중국은 점점 강경해졌다.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사드에 반대하자, 시진핑 주석까지 나섰다. 시 주석의 체면이 걸렸으니, 중국의 보복은 오래 갈 것이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은 중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은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문 대통령의 얘기를 자세히 듣기도 전에 거부했다. 북한은 점점 위협적인 미사일을 선보였고, 중국은 사드 보복을 풀 기색이 없다.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어렵다는 것은 정상 회담에서 확인되었다. 시 주석이 "중국과 북한은 혈맹"이라는 모욕적 발언을 했네 안 했네 논란이 나오는 것에서 회담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중국과 북한을 설득해서 한반도의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자신의 야심이 환상이었음을 문 대통령은 깨달은 듯하다.

외교력은 국력에 비례한다. 강대국은 자신의 의지를 약소국에 강요하고, 약소국은 더 큰 불이익을 겁내어 강대국의 요구를 최대한 받아들인다. 약소국이 강대국을 설득하기는 힘들다. 우리와 중국처럼 힘의 비대칭이 심하고 체제까지 다른 경우엔, 특히 힘들다. "설득은 약한 자의 자원이다; 그리고 약한 자가 설득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는 에드워드 기번의 얘기가 아프게 떠오른다.

우리가 중국을 설득할 힘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국제 관계는 다자 경기(n-person game)이므로, 중국과 우리가 다투면, 중국도 손해를 본다. 바로 그런 사정이 약소국 한국이 강대국 중국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강대국과의 동맹이라는 자원이 있다. 시 주석이 "중국과 북한은 혈맹"이라고 말했을 때, 문 대통령은 바로 그 말을 받았어야 했다. "혈맹 얘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우리도 혈맹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전쟁에서 함께 싸운 16개국입니다. 특히 미국과의 혈맹은 튼튼합니다."

그것으로 족했다.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나 지금이나 미국이 중국보다 훨씬 강한 나라임을, 지금 한국은 중요하고 활기찬 나라지만, 북한은 파산해서 중국의 도움 없이는 쓰러질 나라임을.

우리 지도자들은 미국과의 동맹이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소중한 줄 모르니, 그것을 우리에 적대적인 나라들과의 교섭에서 활용하지 못한다. 미국이 북한을 선제 공격할 때, 중국이 혈맹 북한을 도울 길은 없다. 반면에,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한, 북한은 물론 중국도 감히 한국을 공격할 수 없다. 그런 비대칭이 미국과의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가 일깨워준다.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겨루려는 중국은 그 사실에 예민하다.

실은 우리에겐 또 하나의 자신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지니는 뛰어난 도덕성이다. 왜 우리 지도자들은 중국에게 말하지 못하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북한 정권을 돕는 것은 부도덕하며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돕고 감싸는 것은 더욱 부도덕하다는 사실을. 다자 경기인 국제 관계에서 도덕은 근본적 요소이고, 통념과 달리,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우리 지도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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