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 뒤 곧바로 블록버스터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가마솥더위를 달구는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 논란 말이다. 추경안 11조 2000억 원의 0.0007%인 80억 원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은 7월의 태양만큼이나 뜨거웠다. 여야는 연이틀 추경안 등에 대한 처리를 시도했지만 진통은 불가피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비용을 삭감하는 대신 목적예비비 활용 카드까지 들고 나왔다. 야권이라고 호락호락할 리 없었다.

80억 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공무원 17만 4000명 증원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올해 1차로 공무원 3만 4800명을 늘리기 위한 시험·교육비로 정치적 의미가 적지 않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금과옥조로 삼은 청와대와 여권으로선 애초부터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미래 재정 부담을 내세운 야권 입장에선 배수진을 친 싸움이 됐다. 정치적 공방으로 봉합한 대선 후보 TV토론의 2라운드 성격을 지니면서 정국 주도권 잡기 양상으로 치달았다.

앞서 있었던 최저임금 인상은 공무원 증원을 둘러싼 향후 전개 상황과 파장을 암시한다. 시급(時給)이 내년부터 1060원 오른 7530원으로 결정된 건 거대한 정책실험이다. 3년 뒤 2020년에는 1만 원으로 오른다. 장밋빛 전망대로라면 근로소득과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내수가 회복되고, 성장이라는 결실을 맺는다. 문제는 노동자와 영세업자라는 을(乙) 사이의 눈물겨운 사투 끝에 비극의 막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얼마나 위기의식을 느꼈으면 4조 원을 긴급 투입해 근로자 임금을 보전하겠다는 황당한 대책을 내놓았겠는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이 임계치를 넘어서면서 고용 축소와 회피로 이어질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 한국경제에 미칠 여파를 예단하기 어려운 가운데 영세자영업자와 시급 노동자가 동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딜레마 중 하나는 한국인 숙련근로자보다 외국인노동자에게 혜택이 더 돌아가는데 있다. 또 올해 139만 5800원인 9급 공무원 1호봉 월급을 민간 최저임금과 맞춰야 하는 등 공공 부문의 도미노 인상이 불가피하다. 어떤 뇌관이 어디서 튀어나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지 예상하기 어려운 게 더 큰 문제일지 모른다.

공무원 증원은 모두가 머리를 맞대도 풀기 쉽지 않은 고난도 방정식이다. 당장 국민 혈세가 필요한 데 인건비 추정치의 간극이 너무 벌어져 있다.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캠프 쪽은 17만 4000명을 채용(7급 7호봉 기준 5년간)하는데 16조 7000억 원이면 넉넉하다고 추산했다. 반면 국회예산처는 28조 5499억 원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 쯤 되면 주판알부터 제대로 두드린 뒤 논의를 진행하는 게 순리다. 초유의 정책실험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숙고하고 또 숙고해도 돌발변수는 널려 있다.

1060원이든, 0.0007%이든 나비효과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쩌지 못하겠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즈가 간파한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과 같은 엄청난 날씨 변화를 일으킨다는 이론이다.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계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수치 하나를 반올림해 계산했다가 결과 값이 엄청나게 달라지는 걸 발견한 데서 탄생했다고 한다. 혼돈과 불확실성이 대한민국을 짓누르는 상황이다.

한번 공무원이 되면 평균 30년을 근속한다. 이 대목을 계산에 넣으면 증원 비용은 최대 327조 원으로 열기구처럼 팽창한다. 여기에 연금 추가분 24조 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 곳간과 더불어 국가경쟁력 약화를 걱정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공무원 증원 소식에 노량진 학원으로 달려간 직장 초년생이 부지기수이다.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제4차 산업혁명기에 청년의 도전과 혁신정신이 사라지게 된 건 국가적으로 손실이다. 안 그래도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성장잠재력이 곤두박질친 지 오래다. 성장의 불씨를 살릴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러다간 한국 경제의 체질이 아예 약골로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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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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