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첫 번째 칼럼 `와인과 김치`가 지면에 실리면서, 칼럼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 제 주변 분들의 많은 격려와 조언이 있었습니다. 와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일반인들이 와인을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유익한 정보를 와인 관련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소개하려 노력하겠습니다. 와인에 관한 공감할 수 있는 명언들도 다수 들었는데,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신뢰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 인상에 남습니다.

와인을 한 병 사서 맛볼까 하고 매장의 와인 진열대 앞에 서면, 그저 막막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와인 초보자와 같이 와인에 대해 아주 모른다 가정하고, 할인매장의 와인코너에 가서 매장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보통 레드와인은 알파벳으로 A/라이트바디, B/라이트-미디엄 바디, C/미디엄 바디, D/미디엄-풀바디, E/풀바디 순으로, 화이트와인은 숫자로 1/드라이, 2/미디엄 드라이, 3/미디엄, 4/미디엄 스위트, 5/스위트 순으로 제공하는 정보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위의 일차원적인 설명보다는 X축에 Light/Heavy의 5단계와 Y축에 Sweet/Dry 5단계로 이차원의 점찍기(25개 가능)가 보다 해당 와인의 특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더군요. 참고로, 와인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입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을 물은 라이트바디, 우유는 풀바디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김치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에게 우선 동치미나 겉절이를 권하듯이, 이제 막 와인을 접하기 시작하신다면, 스위트한 화이트와인이나 보졸레 같은 가벼운 레드와인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편, 현재 판매되는 와인은 시음 적기 이전의 것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홍시를 예로 들어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잘 익은 홍시가 맛있지만 판매자는 익기 전의 홍시(땡감)를 판매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선택한 홍시가 가장 맛있는 상태이기를 원하지만 판매자 입장에선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덜 숙성된 홍시를 판매합니다. 맛있게 아주 잘 익은 홍시를 팔 경우, 만약 재고가 남아 폐기해야 한다면 손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와인도 이와 마찬가지로, 마시기 적당한 시기 이전에 판매가 됩니다. 이 논리를 이해하시면, 때로는 당장 마시기에 좋은 와인을 품질 대비 가격 면에서 아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와인을 고르다 보면 소비적기가 다소 지난 와인을 헐값에 구입하는 횡재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2000년대 초반에 코스트코 와인코너에서 1992년산 아르띠그 아르노(Artigues Arnault)란 뽀이약(Pauillac) 와인(크뤼 클라세 와인인 Chateau Grand-Puy Ducasse의 세컨드 와인)을 발견했습니다. 정상가의 5분의 1정도의 가격(2만 원대의 현지가보다도 저렴)에 다량 구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한 병만 먼저 사서 맛을 확인했습니다, 뽀이약 와인은 10년 이상 보관해도 무리가 없지만 1992년산은 작황이 좋지 않아 5-8년 정도가 보관적기였고, 다행이도 이 와인은 3-5년 동안 정상수준의 맛을 지켜주었기에, 정상가 3만-5만 원의 와인을 만원 미만의 가격에, 숨겨 놓은 꿀단지처럼 빼먹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매대 밑의 박스에 들어 있는 와인들까지 뒤져 찾아서….

와인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제 본업인 연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와인과 연구의 공통점을 찾으면 `숙성`입니다. 잘 익은 포도로 담아 잘 숙성된 와인이 좋은 와인이듯, 연구도 충분한 노력과 시간을 바탕으로 한 내공(숙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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