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장내과 의사이다. 내가 경험했던 급성 심장병을 가진 환자에서 마음이 쓰였던 가슴 찡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따르릉, 따르릉." 어둠 속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떠지지 않은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보니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다. 오랜 임상 경험으로 이 시간에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대부분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예상대로 전공의 1년차의 전화로 급성심근경색환자가 응급실에 왔다는 것이다. 급성심근경색환자는 초를 다투는 질환으로 지체 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빨리 옷을 챙겨 입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서둘러 환자와 차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환자는 29세 여자 환자로 10일 전 정상 분만으로 첫 번째 여자아이를 낳은 기왕력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질환이나 가족력이 없는 환자이다. 환자는 분만 후 산후 조리원에서 산후조리를 받고 있는 도중 갑자기 발생된 가슴통증으로 병원을 찾게 되었다. 한 시간 전 환자는 심한 가슴통증이 발생했고 당시 개인의원에서 찍은 심전도는 정상소견이었다. 하지만 환자는 계속해서 가슴통증을 호소했고 119 구급차를 타고 심전도를 관찰하며 우리 병원으로 옮기던 중 심실조동이 발생, 환자는 의식을 잃고 쇼크 상태에 빠지게 됐다. 재빨리 119 요원들은 전기충격을 가했고 우리 병원에 도착 당시 환자의 심박동수는 152회/분, 혈압은 100/70mmHg, 호흡수는 24회/분 이었고 의식은 혼수상태였다.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기관 내 삽관을 시행하고 인공호흡기를 사용해 환자에게 충분한 산소공급을 해준 후 피검사와 심전도를 시행했고 심전도는 한 시간 전 개인의원에서 찍은 심전도와는 달리 150회의 동성 빈맥으로 ST분절 (II, III,avF, V1-V6) 이 올라가 있었다. 피검사 결과는 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으나 심장효소와 프로 나트륨이뇨 펩타이드가 상승돼 있었다.

우리는 STEMI로 진단을 하고 서둘러 심초음파를 시행했다. 초음파 결과 박출 계수는 38%로 좌심실 기능은 떨어져 있었고, 심근경색의 경우 심장 벽 움직임이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있기 마련이지만 이 환자의 경우 전체적인 움직임은 정상인데 반해 심첨부위의 움직임은 떨어져 있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심혈관 조영술과 좌심실 조영술을 시행한 결과, 환자의 관상동맥은 모두 정상이었고 혈관경련 검사에서는 양성을 보였다. 좌심실 조영술에서는 심초음파와 마찬가지로 다코쯔보(일본어로 문어 잡는 항아리라는 뜻) 모양을 보였다.

여러 가지 검사와 진단을 통해 환자는 산후 조리에 발생한 스트레스성 심근병증(다코쯔보병)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일단 혈압이 높지 않아 심부전 시 사용하는 약을 소량으로 먼저 사용했고 혈압을 관찰하며 환자를 중환자실에서 지켜봤다. 다행스럽게 환자는 24시간 만에 의식을 회복했고 2주 후 시행한 심 초음파 상 좌심실 구축률은 62%로 정상소견을 보였으며 심장벽 움직임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퇴원한 환자는 6개월 동안 외래를 다니며 정기적인 진료와 약물을 복용으로 지금은 약물복용을 끊은 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 환자의 경우 나이가 너무나 젊으며 아이가 태어난 지 열흘 밖에 안된 상태였고 환자와 가족들 또한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환자가 의식을 회복하면서 가장 먼저 아이를 찾았고 약물을 복용함으로 모유 수유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에게 굉장히 미안해하는 것을 보면서 모성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환자는 퇴원하는 날 내 손을 잡으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너무나 고맙고 아이를 예쁘게 키우겠다"며 활짝 웃었다.

몇 년 후 외래 진료실에 조그마한 케이크와 함께 꼬마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여성이 찾아왔다. 몇 년 전 그 환자로 그 때 당시의 엄마의 약속대로 아이는 너무나 예쁘게 자라고 있었고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은 행복함이 가득했다. 그때 먹은 케이크는 내가 지금껏 먹어 본 케이크 중에 가장 달고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건 단순한 케이크가 아닌 내게는 한 가정을 지켰다는 뿌듯함과 자긍심, 다른 이들의 행복들이 더해진 케이크이었던 것이다.

그 맛있는 케이크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은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닌 심실 조동 시 빨리 전기충격을 가했던 119요원들과 환자 치료에 가담했던 우리 병원의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의 덕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나는 가슴 뿌듯한 일은 하는 심장내과 의사이다. 허성호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심장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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