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우려는 어김없이 현실이 된다.

새 정부는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판단, 기능을 재건하기 위해 과학기술혁신본부 설치 및 4차 산업혁명위원회·과학기술보좌관 등의 제도를 부활·신설한다.

과학기술인들이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과학기술본부의 설치다. 새 정부의 구상대로라면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던 기존의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 조사권한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운영비·인건비 조정 권한을 이전받고, 기획재정부 R&D 지출한도 설정 등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막강한 권한이다.

하지만 권한을 쥐고 있던 기재부가 제동을 걸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지출 한도 설정 권한을 내놓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취임 후 정부조직법 등을 통해 관철시키려던 새 정부 과학기술계 정책의 핵심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예산권의 독립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생각에 정책을 편 것이다. 그동안 성과주의예산제도 등을 통해 관료주의적 과학기술 정책이 횡행해, 과학인들 사이에서 큰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기재부의 부처 이기주의가 발동하며 그동안의 관행을 이어가려 한다. 부처 간 협의가 진행중이라고는 하나 전망은 밝지 않다.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설치한다고 발표될 때부터 이런 우려는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장관급 산하인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부총리급의 기획재정부에 실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부터 정부의 구상이 부처 이기주의를 뚫고 안착할 수 있을까까지 다양한 걱정의 목소리가 있었다.

과학계는 이런 정책이 발표될 때 미래부와 기재부의 교류가 없음을 지적했다. 예산권이라는 큰 권한을 이전하는데 사전교감이 없이 진행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판단에서다. 새 정부는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를 세우기 전에 내각의 컨트롤타워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집권 석 달도 안 된 대통령의 중요 공약에 반기를 든 것은 새 정부의 위상을 방증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밝혔다. 부처 중 `갑`이라 불리는 기재부의 행보보다 문 대통령의 대응이 더욱 궁금한 이유다. 국민과 과학기술계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공감할 수 있는 정책으로 기초과학부터 4차 산업혁명까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길 바랄 뿐이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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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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