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을 서로 아끼며 살아온 부부가 있다. 자식 둘을 모두 대학에 보냈고 출가도 시켰다. 평온한 황혼을 맞을 줄만 알았는데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중증 치매란 후유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하루하루 전과 다르게 변해가는 아내를 보면서 환자 수발도 힘들었지만 매달 120만 원의 병원비는 자식들 보기도 미안했다. 설상가상으로 간병을 하던 남편마저 여기저기가 아파와 더 이상 간병도 힘든 상황. 남편은 우리 인생 여기까지인가 극단적인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곤 한다.

요즘 `99 88 234`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나흘 만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이런 식의 건강하고 행복한 장수가 `축복`이라면 큰 고통과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치매 같은 질병을 동반한 장수는 차라리 `재앙`에 가깝다.

치매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정신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적 능력이 모자라는 경우를 `정신지체`라고 부르는 반면, 치매는 정상적으로 생활해오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에 의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이전에 비해 인지 기능이 지속적이고 전반적으로 저하되어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나타나고 있는 상태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잊게 되는 이 병은 환자 자신을 망가뜨리고 심지어 가족이 환자를 증오하게 만들기도 한다. 성격 변화, 우울, 불안, 망상, 환각, 배회, 공격성, 이상 행동, 수면 장애 등 성격·정서 또는 행동의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래서 치매 환자는 개인이나 가족이 돌보기 어려운 특성이 있으며 치료와 간병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나눠 가져야 한다.

지난달 2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세곡동 서울요양원을 방문해 핵심 공약중 하나인 `치매 국가책임제`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실행을 다시 강조했다. 치매 국가 책임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는 치매 관리의 필요성 때문만이 아니라 치매와 같은 사회서비스 영역의 국가책임제는 복지와 경제가 일자리를 통해 만나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상징적 사안이기 때문이다.

치매 치료의 국민건강보험 본인 부담률을 공약대로 10% 이내로 낮추고 노인장기요양보험에도 국민건강보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연간본인부담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중증 치매 환자를 돌보는 장기요양시설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1%에 불과한 공공요양시설의 비중을 크게 늘리고, 민간요양시설의 질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관련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치매 국가책임제는 적정 임금이 보장되는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전제로 추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여기에 덧붙여 환자를 격리해 보호하는 요양중심 현재 시스템을 치매 환자의 삶의 질에 중점을 두어 전환할 필요가 있다. 바로 네덜란드 `호그벡(Hogeweyk)` 마을이 그 모델이다. 호그벡은 일명 치매 환자들의 천국이라 불린다. 얼핏 보기엔 일반 마을처럼 보이지만 이 마을의 마트에는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고 시설을 이용할 때도 돈을 내지 않는다. 각 상점이나 시설에 배치된 직원은 실제 인력이 아니라 요양 전문 간호사나 간병인, 노인병 전문 의사이다. 이들은 마을 안에서 치매 환자들이 눈치재지 못하도록 하면서 수시로 환자를 간호한다. 이 마을의 설계자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익숙한 환경에 모여 살아야 스트레스와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보았고 치매 환자를 위한 더 자유로운 공간을 제안했다. 그래서 이 마을의 치매 환자들은 자신이 치매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남들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고 스트레스가 적어 다른 치매환자들에 비해 투여 받는 약물이 적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방문했던 서울요양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공공시설로 정원이 150명인데 대기자는 900명이다. 한 달에 두세 명이 퇴원하는 걸 감안하면 900번째 대기자는 30년을 기다려야 입원 순서가 돌아온다. 이와 같은 공공시설의 부족은 민간 장기요양병상 이용으로 이어지며 환자 간병과 치료에 대한 부담으로 전가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우리나라에 호그벡 마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시간과 자본 대비 효율적인지 의문이 되기도 하지만 치매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어 보인다. 치매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일방적인 격리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강구하는 모습, 일상생활 능력을 유지해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유미선(충남대학교병원 약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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