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슬픔으로 반미치광이가 된 지민은 지현의 양부모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KAL기를 격추시킨 소련 전투기 조종사 오시포비치를 암살하기로 결심한다. 무모하지만 러시아 외교관의 딸 소피아에게 언어를 배우며 러시아행을 계획하던 지민. 그는 갑작스럽게 미 연방수사국에 의해 체포돼 댄버리 교도소에 구금된다. 그러나 억울한 수감 생활은 그를 낯선 운명 속으로 던지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싸드(THAAD)` 이후 3년, 김진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2014년 저자가 쓴 `싸드`의 다음 행보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싸드`를 통해 한반도 사드 배치를 예언하고, 미·중 갈등까지 예견했던 저자다. 그는 또 어떤 이야기로 독자들을 놀라게 할까? 김진명의 거대한 상상과 예리한 촉이 향한 곳은 미·소의 파워 게임이 한창이던 1980년대의 세계다. 뉴욕과 베를린, 비엔나, 모스크바 그리고 평양을 종횡무진하며 광대한 스케일을 선보인다.

거기에 소설의 큰 축으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세기적 사건, 바로 그 실체가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1983년의 KAL 007기 피격이다. 269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사할린 근해에서 소련 전투기에 격추당했던 비극적 사건이다.

34년 전 KAL 007기 피격 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장편소설인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현재`에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강한 시사점을 남긴다.

박근혜 탄핵, 촛불, 문재인 정부의 탄생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의 각축으로 이어지는 긴박한 정치상황 속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인 것이다.

신(新)정부 출범 직후에도 여전한 사드 배치 관련 후폭풍에서도 알 수 있듯, 한반도는 냉전 이후에도 미·중·일·러 4강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이다. 저자는 그 같은 상황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의 본질인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의 중요성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환기시킨다.

저자 특유의 성역 없는 상상력은 이번에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독자들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현대사의 시발점이 된 미·소 냉전의 종식에 대한 국제정치적 통찰이 지적인 즐거움을 준다면, 주인공 지민이 겪게 되는 스펙터클한 사건들은 드라마적 재미의 극치를 선사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김진명 소설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이호창 기자

김진명 지음/ 새움/ 376쪽/ 1만 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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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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