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국민의당의 출발점은 민주당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친문(친문재인)패권세력`에 대한 피해의식이다. 2012년 대선후보를 문재인 후보에게 통 크게 양보했던 안철수 의원이 2015년말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을 결행했다. 대선을 겨냥한 행보였지만 기치는 `반문`이었다. 이후 안 의원을 정점으로 김한길, 박주선, 천정배 등이 동참하면서 세를 키웠고, 이듬해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문재인 호남 홀대론`을 앞세워 호남의 민심을 얻었다. 이런 정치적 애증은 문재인-안철수가 격돌한 이번 대선에 이르기까지 지속됐고 증거조작이란 희대의 정치적 사건으로 번졌다.
국민의당에서 안철수 전 의원은 건축주요, 박지원 전 대표는 설계자다. 두 사람은 당의 상징이자 존립근거와도 같은 존재다. 문준용씨 의혹 제보 조작이 불거지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이 두 사람을 직격했다. 국민의당 자체 진상조사 결과, 당원에 불과한 한 사람의 단독범행이란 발표에 대해 `머리 자르기`라고 비판한 것이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어 국민의당이 추경 심사를 위한 예결위 불참 등 강경한 태도를 취하자 추 대표는 국민의당의 조작사건은 형사법적 `미필적 고의`라고 못박으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설상가상 검찰이 조작의 책임을 물어 이준서 전 최고위원에 대해 `미필적 고의`로 영장을 청구하자 국민의당은 여당 대표가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며 `문준용씨 취업특혜와 제보조작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등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선 국민의당은 경쟁자이지만 여소야대 국회에서 그마나 협치파트너로 삼을 수 있는 정치세력이다. 그런데 추 대표는 연일 국민의당을 자극하며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국민의당은 안 그래도 조작 파문 여파로 지역적 기반인 호남에서조차 싸늘한 민심에 애를 태우는 형편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조직의 이탈 조짐 등 당의 존립기반까지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있다. 그렇기에 추 대표의 공격은 아파도 너무 아프다. 국민의당을 궤멸시키려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국민의당이 추 대표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며 불퇴전의 각오를 되새기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추 대표는 자신의 발언과 관련,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배경은 없다고 방어막을 치고 있다. 정치공작과 선거범죄에 대한 원칙을 밝혔을 뿐이란 것이다. 백 번 옳은 얘기고 엄정한 수사와 처벌도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입장 표명은 굳이 여당 대표가 나설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현안 가운데 하나인 일자리추경안이 제출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심사에 착수조차 못하고, 인사청문회 일정도 겉도는 상황에서 여당 대표의 강공(强攻)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민주당 내에서도 추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당 대표에게 선명성도 중요하지만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선 때론 양보와 포용력도 겸비해야 할 덕목이랄 수 있다. 마침 어제 안 전 의원이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반성과 성찰의 시간 갖겠다"고 사과한 만큼 더 이상 전선을 확대해서는 곤란하다. 추 대표는 이제 국민의당의 피해의식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고 통 큰 정치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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