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상황에서 해결 전략은 다양하다. 상황 자체를 `모르쇠`로 일관하며 상대가 나가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무시` 전략도 있고, 상대와 합리적인 기준을 정하여 `타협`하거나, 갈등 상대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 전략도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여 해결하려는 `경쟁` 전략과 상대를 인정하고 함께 대안을 만드는 `협력` 전략도 있다.

상대를 제압하고 싶지만 에너지가 너무 많이 투여될 것이라 예상되는 경우, 만족스럽진 않지만 일정한 지분만 챙기고 갈등 상황을 마무리 짓는 `타협` 전략을 선택한다. 상대에게 대들어 봤자 손해만 볼 것 같은 경우, 관계라도 유지하자는 심산으로 `수용` 전략을 선택한다. 수용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 상대가 주는 대로 받아야 하지만, 그래도 관계(relationship)는 유지될 수 있다.

상대를 힘으로 눌러 제압하려는 경쟁 전략은 힘이 우세할 경우 문제가 없다. 상대를 눌러 자신이 모든 것을 차지하면 된다. 문제는 힘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다. 이런 경우 경쟁 전략은 위험이 따른다. 질수도 이길 수도 있다. 이기면 모든 것을 독차지하게 되지만, 지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때때로 이기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여 `상처뿐인 영광`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다가 치열한 경쟁은 관계 악화와 보복이란 후유증을 남긴다.

상대와 힘을 합쳐 갈등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협력이란 말은 영어로 co-operation이다. 함께(co) 일한다(operate)는 의미다. 협력은 단순히 상대를 돕는다는 의미를 협조 혹은 도움(help)과는 의미가 다르다. 협력이 잘 이뤄지는 경우, 각자가 가져가는 몫도 커지고 관계도 훼손되지 않는다. 누가 봐도 협력은 다른 것보다 좋은 전략이다. 모두가 아는 이 빤한 이치에도 불구하고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이 왜 그렇게 어렵고 드문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사기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함께 일해 놓고 그 성과는 한쪽이 몽땅 챙겨가는 경우이다. 이 경우 한쪽은 모든 것을 잃고 많다. 이렇다보니 웬만한 정도의 신뢰가 아니고는 쉽게 협력하지 않는다. 사기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협력하느니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개인플레이가 많고 협력이 어려운 사회를 `저-신뢰 사회`라고 한다. 저-신뢰 사회일수록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협력이 발생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조건은 상대와 힘을 합쳐봐야 별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부담만 커지다고 판단하는 경우 협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상대가 나에게 도움이 될 거란 판단이 서야 협력이 발생한다. 상대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도 그렇다. 같은 목표를 갖고 힘을 합칠 때 플러스 효과가 발생해야 협력이 의미를 갖고 지속될 수 있다.

갈등 현장에서 늘 경험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힘의 불균형이다. 한쪽은 많은 정보와 돈을 갖고 있고, 우수한 인력도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아는 것도 없고, 돈도 인력도 없다. 갖고 있는 힘은 오직 상대의 일을 망가뜨릴 정도의 밖에 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공공사업을 하는 국가·지방정부와 지역주민과의 관계가 그렇다. 국가에 비해 지역주민의 역량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들도 국가나 지방정부의 일을 방해(?)할 정보의 힘은 있다. 그렇다고 예전같이 공권력을 맘대로 휘두를 수도 없다. 갈등이 장기화되는 경우 사회적 비용과 불편은 계속 들어나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나 공공기관이 주민에게 협력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협력할 만한 조건을 만드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문제를 협력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약한 상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역주민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정보도 주고, 참여 기회도 제공하고, 함께 논의도 하면서 상대가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상대의 역량이 함께 협력해도 손해가 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협력이 의미를 갖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주민 역량이 강화될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줘야 하다. 막말로, 잡아먹더라도 키워서 잡아먹어야 한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