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들어 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물어도 대답이 없고 기운도 없어 보인다. 눈동자가 대신 말을 해주고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쉬게 하고 나는 밖을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하얀 꽃으로 달콤한 향기를 자랑하던 아카시아 꽃도 금년에는 어찌 그리 빨리 졌는지 짙어져 가는 잎에 가려 사라진 지 오래다. 이름 모를 넝쿨 식물이 이곳저곳으로 힘차게 생을 찾아 줄기를 뻗고 있다. 키만 크다가 잎이 반쯤 말라버린 소나무 한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다. 그 나무의 사연이 궁금하다.

옆을 보니 젊은이도 어느새 밖을 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참을 보고 난 후 젊은이가 하는 말 "너무 힘들어요. 세상이 무섭고 두려워요". 저 숲의 여느 식물도 살아가면서 힘들어하고 두려워하고 있을까? 혹시 저 소나무가….

두려움은 우리 모두에게 극복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이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큰일을 하면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항상 소지하던 성경책을 해지도록 읽고 또 읽으면서 기도했던 구절이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이다.

무엇이 그리 볼 것이 많은지 엄지손가락으로 연신 휴대폰의 화면을 위아래로 넘기다가 의논할 일이 생겨 친구에게 보낸다는 것이 그만 단톡방 키를 눌러 버리고 말았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학우들에게 자신만의 비밀이 한순간에 드러나게 됐고, 엄청난 자존감 상실에 그만 말도 잃고 친구도 잃고 자신의 설자리도 잃었다.

세상은 점점 똑똑한 사람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말 잘하는 사람들은 `경쟁`과 `혁신`을 외치면서 세상을 자꾸만 인간적 동화(同和)가 아닌 경쟁적 양극화의 무서운 세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 젊은이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젊은이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자신이 없다. 어려서부터 부모님도 허약하게 과보호로 키우셨으니 지금에 와서 두렵고 힘들 수밖에 없다.

창밖의 저 숲은 어떻게 끊임없는 변화로 다양성을 추구하며 전체조화를 이루고 있을까. 짧은 시간이지만 자연에서 자생적 생명에너지의 원천인 순리(順理)를 배우고 있다. 우리는 `자연스럽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자연스럽다는 도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사전적으로는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는 의미이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생의 본능에너지로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을 극복하였으면 좋겠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주변 환경 속에서 순행적 변화로 자연처럼 순리에 잘 적응하고 그 일부로 살아가면 된다. 순리에 적응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기고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기 때문이다.

"나는 힘이 센 강자도 아니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닙니다. 타성의 생쥐를 몰아내기 위해 날마다 새롭게 변화할 뿐입니다. 그것이 나의 성공 비결입니다. `Change`의 g를 c로 바꿔보십시오. `Chance`가 되지 않습니까". 빌게이츠가 한 말이다.

어떠한 악조건 하에서도 행복의 기회를 만드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나의 라이벌은 어제의 `나`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이다. 나의 가치는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자존감을 키우고 작은 성공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현재의 나를 키워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제각기 그 사람만의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IQ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쟁세계가 아닌 다중지능의 타고난 소질로 자연처럼 순리에 따라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로 발전해야 한다. 나만의 타고난 소질에 다양한 경험이 더해져 융·복합된 지식과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자신이 잘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것이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나는 못할 것 같아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는 식으로 자신을 학습시켜 묶어 놓아서는 안 된다.

오늘을 힘들어 하는 젊은이가 닫힌 입이 열리고, 두려움 없이 활기차게 세상 문을 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성공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박찬승 대덕대학교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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