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되어 다국적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 걸프전은 첨단 하이테크 전쟁의 서막을 연 전쟁이라는 평가를 받곤 한다. 이 전쟁은 질적 우위가 양적 우위를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 때문에 걸프전 이후 각국은 군사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첨단무기 구입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첨단무기가 전쟁 승리를 가져다 준다는 강대국들의 맹신이 깨지는 데는 10여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정예 군대를 가진 미군이 변변찮은 훈련도 받지 못하고 낡은 소총으로 무장한 이슬람 반군에게 사실상 패배한 것이다.

정치적·종교적 신념으로 가득한 민병대 수준의 이슬람 반군은 10여 년에 걸쳐 미군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천문학적인 전비(戰備)와 끊임없이 늘어가는 인명 피해에 대한 부담은 결국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미군을 스스로 물러가게 만들었다.

이른바 4세대 전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종래의 전쟁이 대포와 미사일의 화력으로 적의 중심부를 공격해 항복을 받아내는 형태였다면, 4세대 전쟁은 적 전쟁지도부의 심리를 공격해 적 스스로 전쟁 의지를 꺾어버리는 형태로 치러진다.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이나 테러·사이버 공격 등은 적국의 국민들에게 공포를 심어줌은 물론 전쟁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공포와 피로감은 반전여론으로 이어지며, 이로 인한 정치적 부담은 결국 국가 지도부로 하여금 전쟁 의지를 포기하게 만든다.

이러한 형태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는 미사일도 전투기도 필요 없다. 신념으로 무장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은 특수부대를 대대적으로 확충해왔고, 유사시 우리나라의 후방 지역에서 게릴라전과 테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놓고 있다.

대전·세종·충남 지역은 유사시 가장 많은 북한 특수부대가 침투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정부세종청사는 물론 육·해·공군본부와 주요 군사시설 등 전략적 요충지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오는 17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화랑훈련이 실시된다. 화랑훈련은 적 특수부대나 테러분자와 같은 위협으로부터 국가 중요시설과 다중이용시설 등 후방 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민·관·군·경 통합방위 훈련이다. 이 훈련은 도상연습은 물론 실제 병력과 장비까지 동원되며, 대항군까지 운영되기 때문에 시내 곳곳에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종종 묘사될 것이다. 특히 국가 및 군사 중요시설에 대한 테러 대비훈련과

군·경 합동 검문소 운영, 예비군 소집훈련, 주민신고 등이 실질적으로 실시된다.

이번 훈련은 관할 군부대인 육군 제32보병사단을 비롯해 지자체와 유관기관단체들을 중심으로 실시되지만, 최근 위중한 안보상황을 고려한다면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는 시민이라는 물속에 섞여 사는 물고기와 같은 존재다. 시민이 그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우호적이면 기세 등등하게 창궐할 것이고, 시민이 확고한 주인의식과 안보의식을 가지고 주변을 살핀다면 말라 죽을 것이다.

이번 화랑훈련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민·관·군이 하나 되는 총력안보태세를 보여준다면 힘의 우위를 통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남북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도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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