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호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오창호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 어머니께서 사제 서품을 받기 전에 말씀하셨다. `창호야, 바다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오물을 품어 안고도 고요한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어렸을 때 친구와의 싸움에서 가해자였기도 했지만 피해자가 되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나에게 당했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엄마를 찾아가 그 친구를 혼내달라고 떼를 썼다. 바다와 같았던 엄마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신 다음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호야, 엄마는 힘이 없는데 어쩌지?` 어린 나는 엄마의 이런 말을 듣고 속상해졌었다. 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엄마가 답답하고 밉기도 했었다. 시간이 흘러 그때의 엄마 보다 나이가 더 많은 지금, 나는 어머니의 지혜로움과 사랑에 감사하고 있다. 만일 그때 어머니께서 무조건적인 나의 편이 되어주셨다면 나는 누군가의 편이 되어 누군가의 가해자로 사는데 익숙해져 있지 않을까?

우리는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가며 불안해한다. 그래서 종교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만을 주고, 원하지 않는 것은 피하게 해주는 무조건인 나의 편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라고 하신다. 이것은 선과 악, 좋음과 나쁨에 대한 온전한 앎은 하느님만이 가지고 계시기에 인간은 하느님께 그분의 자리를 돌려드리고 다만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행복의 기준을 불행이 없는 좋은 일만 가득한 상태라고 상정한다면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난 영에 가깝다고 본다. 왜냐하면 역사상 그러한 행복 속에서 산 사람이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모든 것을 품어 안기 때문에 다양한 생물들이 그 안에 산다. 우리는 그것이 고통과 불행이든 모든 것을 품어 안고 그 안에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감추어놓으신 나를 성장시키는 하느님의 선물들을 발견해 나가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다양한 생명을 품어 안는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비록 좋은 일일지라도 그곳에 안주하려고만 하면 나는 어떤 생명도 품지 못하는 사해로 변해간다. 천국은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품어 안는 사람들, 이웃의 한계와 약점, 그리고 부족함을 품어 안는 바다 같은 사람들이 사랑으로 하나 된 곳에 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바치신 마지막 기도에서 밝히신 대로 참된 행복과 구원은 바로 이러한 `하나` 됨에 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21) 반면 좋고 나쁜 것에 대한 구분이 명확한 사람들이 좋은 것만을 얻으려고 할 때, 그리고 이웃의 좋고 훌륭한 점만을 받아들이고 한계와 약점은 잘라버리려고 할 때, 일치가 아닌 구분과 분열이 생긴 그곳에 지옥 불이 타오르게 된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sign)을 보고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를 했다. 표징이 어떤 실재를 지시하는 것일 뿐임에도 예수님을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으로 착각한 그들은 기적과 같은 일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나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동조를 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은 그분의 희생과 봉사를 드러내는 한 방식일 뿐이었다. 모든 표징들은 최고의 봉사이자 희생인 십자가상의 죽음을 지향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바랐던 기적은 모든 사람들이 피해 떠났던 십자가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이것을 알았더라면 예수님의 표징들이 의미하는 바대로 그들도 자신을 채우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봉헌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나에게도 고통과 불행이 찾아오고는 한다. 때로는 완전히 나를 무너트리는 고통과 불행이 찾아왔었다. 내가 정해놓은 행복과 미래의 계획이 철저히 무너지는 거짓된 내가 붕괴되는 체험 속에서 나는 단지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의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저릴 정도로 힘이 잔뜩 들어갔었던 내 몸에 힘을 빼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훈련을 해나가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말씀하신 성모님처럼, 십자가상의 죽음을 앞두고 당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셨던 예수님처럼(루카 22,42), 단지 참된 행복과 구원의 유일한 길인 그분의 뜻이 내 안에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앞으로도 우리의 무조건적인 편이 되어주지 않으실 것이다. 하지만 만물을 품어 안으시는 바다와 같은 아버지이신 그분께서는 우리를 바다와 같은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오창호 천주교 대전교구 국립대전현충원 전담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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