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당신을 서성이는 대신

걷기로 한다

주머니 속엔 한 잔의 커피와

한 시간을 건너 올 차비가 있다

충분한 휘파람이다 혼자서는

젖은 시간을 재촉할 수 없다 찢어진

신문이 가로등을 끌어안고

상처가 없는 사람을 리필해서 마시고

네온사인 따라 흐르는 동안에도 당신은

울지 않는다 붉은 보도블록의 교대로

사라지는 맨홀

느슨한 불안을 깨우는 중이었고

걷기에 충분한 이유가 눅눅해지는 중이었다

번지수를 지운 골목마다 이마에

목련꽃을 그었을 때 한 세계를

쉼표도 없이 들일 수 있다고 믿었다

걷는 이유를 물었다

숨고 싶은 모퉁이를 만드는 거라고 했다

버릴 것이 많기 때문에, 라고 했다

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줄 아느냐고 물었다

이 시는 제목부터 흥미를 끈다. 내가 골목으로 돌아오는 밤이 아니다. 골목으로 돌아오는 밤도 아니다. 골목이 돌아오는 밤이다. 골목이 돌아와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밤이다. 그러니 밤이 되면 고즈넉했던 골목으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북적인다. 텅 비어 있던 골목으로 스윽 하고 어둠을 대동한 밤이 왕래하는 시간이다. 비로소 침묵 속에 서있던 가로등에도 기억이 돌아온 듯 반짝 불이 켜진다. 불빛이 피어나면 골목 속으로는 생기가 살아난다. 골목은 오히려 밤에 골목으로서 체면과 활력을 되찾는 것이다. 고요함으로 청각에 기대 있던 골목으로 이제 시각이 분주해진다. 시인은 서성이는 대신 걷기로 한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한 잔의 커피 값과 한 시간을 달릴 수 있는 차비가 들어 있다. 그것이면 족한 것이니. 시인은 이때 세상에서 가장 풍족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밤은 어둠 속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 누군가를 걷게 한다. 골목이 돌아오는 밤은 모든 사물들이 존재에 눈뜨는 순간. 누구든지 자문하고 또 자답하는 시간이다. 시인은 걷는 이유를 묻는다. 그것은 숨고 싶은 모퉁이를 만드는 거라고 답한다. 버릴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버린다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다시 묻는다.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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