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유성터미널 사업에서 철수했다. 사업시행자의 협약 해지 통보 형식이었지만 어쩌면 해지를 유도한 것과 다름 없다. 사업 진척을 위해 의욕적으로 덤비기는커녕 세월을 허송했고 협약은 깨지고 말았다. 미필적 고의의 심증을 갖게 하는 대목이며, 한편으론 판을 접으려는 내면의 작위와 부작위 경계선에 머물러 있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사업기간이 늘어나면서 사업비 부담이 가중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아무래도 군색하다.
대기업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지방정부 편익시설 사업에 뛰어든 롯데가 중간에 예측 가능한 사후적 사정 변경 요소를 핑계로 손을 터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부지 매입 비용 증대 등 사업성 문제와 관련해 사정이 있으면 시행자 측과 언제든 소통하고 절충점부터 찾아야 했는데 그러질 않고 마냥 해태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양태는 중대한 문제로 부각돼야 마땅하다. 지방정부 단위 사업을 민간기업에 맡겨 놓고서 돌발 리스크를 감내하는 것은 시민 보편정서와 배치되는 일이다.
유성터미널 사업은 법적 절차에 근거해 지역의 교통·문화·유통 인프라를 확충하려는 정책목표가 담겨 있다. 지방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민간사업자를 공모해 탄력적 감정가로 부지를 공여해 주고 부대시설 운영권을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서 국철, 도시철도 역 등에 고속·시외버스 정류장을 집적시키면서 업무·상업 공간을 보충한다.
유성터미널은 사회적 공공재 성격을 띤다. 한번 지어놓으면 반영구적으로 존속된다. 그런 탓에 사업자의 자금력·기술력이 믿을 만해야 하고 관리·운영 노하우 역시 검증돼야 나중에 탈이 안 난다. 롯데컨소시엄은 이들 평점 항목에서 비교우위를 보였고 일찍이 우선 협약 대상자 지위를 획득한 터였다. 대신 완공 후 고용 창출과 영업순익 일부의 지역사회 환원 면에서 적절히 기여하게 된다면 최상의 거래 모델이 될 줄 여겨졌다.
롯데는 지역사회 공동체의 이런 기대감을 등졌다. 시중에 떠도는 풍설을 빌리면 배가 많이 고프거나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다. 첫째 A사업이 매력을 못 느꼈다면 예컨대 지역 유통시장에서 현존 B사업에 기대어 버틸 수 있는 조건이 갱신된 사실이 변수로 작용했음을 추정케 한다. 둘째 인근 엑스포 공원에 들어서게 될 S복합 몰과의 경쟁구도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도 있다. 셋째 유성 관평동 H아울렛 매장설에도 혹 신경이 쓰였을지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이는 가설이고 추정이다. 그런 논리라면 우후죽순 생겨난 지역 대형 쇼핑 매장들이 생존하는 현실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경제이론 상 시장의 수요는 총량 개념에 기속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자 소비자 행동 추세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롯데는 자의든 타의든 유성터미널 사업에서 퇴출됐다. 호텔 체인, 면세점, 콘도미니엄 사업 등 같았으면 필시 국내외를 불문하고 득달같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런 굴지의 대기업이 대전을 외면함으로써 매몰비용이 적지 않지만 무엇보다 시민들 자존감에 생채기를 낸 점이 거슬린다. 공익사업을 책임지겠다며 지방정부와 협약을 해놓고 뒤늦게 사업성을 구실로 삼아 보따리를 싸버린 격이 됐다. 그 뒤치다꺼리에 지방정부와 시행자인 공기업은 사서 생고생이다.
유성터미널 사업 불발은 쌍방과실 쯤 된다. 대기업이 회피할 궁리를 하는 마당이라면 갑·을 지위가 모호해진다. 묘한 지점은 롯데 행태에 대한 지역정서 특유의 무덤덤 정서다. 법리 공방은 차치하더라도 롯데는 간만 보다 말았다. 그런데도 일부 지역 시민들 말고는 감각이 무디고 지역 정치권도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타 대도시였으면 롯데를 표적으로 전방위적인 압박 수위가 가해졌을 개연성이 높다. 때로는 `합리적 분노`가 필요한 법인데 늘 실기한다. 감나무를 흔드는 수고를 하지 않은 채 감이 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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