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강은 자연스레 생겨났다. 스스로 물길을 틔우고, 자궁처럼 수초를 길러 물고기를 키웠다. 그곳에 사람들을 불러보아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다. 자연과 문명의 공존은 그 자체로 평화였다. 그런데 자본은 평화로운 강을 더는 두고 보지 못했다. 현명한 군주는 강과 생존하는 법을 알았지만 무식한 군주는 강을 통치하려고만 했다. 자본을 앞세워 강에 거대한 삽날을 들이댔다. 그들이 국민을 설득하려고 내세운 것은 홍수방지와 수질관리였지만 갈수록 갈등과 분쟁만 키우고 있다.
옛부터 치산치수라고 했다. 강을 잘 다스리면 유순해지고 잘못 다스리면 화를 입는 법이다.
중국 요 임금 때의 예를 들어보자. 요 임금은 그 당시 토목전문가인 곤을 시켜 황하의 범람을 막을 궁리를 했다. 그러나 곤은 메우고 가로막는 방식으로 치수를 벌여 실패를 했다. 순 왕조가 들어서자 다시 황하의 치수 사업을 곤의 아들 우에게 맡겼는데 우는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치수는 물길을 통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 당연히 우의 방식은 성공했고 왕좌를 물려받아 하 왕조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곤이 황하를 다스려 실패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강 앞에 서 있으면 강의 심장을 짓누른 거대한 댐에 가슴이 답답하다. 강이 우는 소리가 지금 내 귀를 먹먹하게 한다. 아픈 강을 어떻게 할지는 순전히 새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유진택 시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