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용 금강유역환경청장
이경용 금강유역환경청장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신의 지적 자산이라는 큰 얼개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 한두 권은 있을 것으로 본다. 나에게는 20여 년 전 미국 워싱턴대학교 유학시절 때 읽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최근에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그 경우이다.

총, 균, 쇠는 영문 초판이 1998년에 나왔으니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기 전인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으로 저자는 그 해 언론인의 최고 영예인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이후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최근까지도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인류사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그동안 내가 아는 역사는 사건·사고 또는 인물이 중심이었다. 반면에 `총, 균, 쇠`는 "오늘날 대륙 간 불평등은 왜 생겼을까?"와 같은 큰 질문에서 출발해 생리학, 조류학, 진화생물학, 인류학, 언어학 등 다방면의 자료를 가지고 인류 역사에 대한 `빅 히스토리`를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오늘날 대륙 간 격차는 이들이 놓여져 있는 지리적 여건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결론을 내린다.

어떤 사람은 지나친 지리적 결정론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존 조건을 제약하는 환경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보다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나의 빈약한 지리적 지식을 바로 잡는 기회도 됐다. 한 예로 아메리카 인디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이미지가 말을 능수능란하게 타고 다루며 총과 화살을 쏘는 모습이었는데, 저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산타마리아 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1492년 도착하기 전에 아메리카 대륙에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 다음 인류 역사에 대한 `빅 히스토리`를 들려주는 책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이다. `총, 균, 쇠`가 대륙 간 인류 발전의 차이를 지리적 여건 차이에서 찾아간 것이라면 `사피엔스`는 왜 많은 생물 중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유독 다른 생물종을 압도하였는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협동 능력은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인간만의 독특한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인류 역사를 똑똑해진 인지혁명, 자연을 길들인 농업혁명, 우리가 위험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된 과학혁명이라는 3단계 혁명을 중심으로 파악했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이 과정에서 우리 인류가 다른 생물종을 어떻게 단순화하고 멸종시켜 왔는지 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우리는 생물학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종이다. 생태학적 연쇄살인범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7만 년 전 중앙 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아시아·유럽 등 각 대륙으로 퍼져 나간 시기와 매머드, 땅나무늘보 등 대형 포유류의 멸종한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인간이 모종을 역할을 하였다는 합리적 의심이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지구상의 생물이 밀, 쌀, 옥수수, 감자, 호밀 등 작물화된 수십 종의 식물과 양, 소, 돼지, 닭 등 가축화된 수십 종의 동물로 단순화되는 것도 우려스럽다. 생물종의 다양성 감소로 인해 우리의 삶의 질은 근저에서부터 뒤흔들어놓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생각하는 존재`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가 맞는 작명이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아바타`에는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나비족`이 나온다. 이 두 권의 책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나비족`과 같은 완벽한 조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도 너무 늦기 전에! 이경용 금강유역환경청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