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갖는다!` 이렇게 말하거나 혹은 그런 감정상태를 유지한다면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잘 한다`고 격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희망`이란 감정상태는 그 촉발원인으로 본다면 나쁜 상태에서 기원한다. 현재의 상태가 좋지 않기에 `희망`이란 감정상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희망을 갖는다`라고 하면 최악의 상태에 대한 불안감 및 공포에서 더 나아질 거라는 갈망을 하는 감정 상태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희망`을 놓으면 절망할 수밖에 없게 돼 삶이 무의미해지고 의욕이 없어진다. 그래서 현재의 상황이 절박하고 매우 나쁜 상태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희망`이다. 이런 심리학적 기초로 투시해 본다면 요즘 대한민국의 상태는 필자에게 매일, 아니 매시간 `희망`의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한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닌 `행복감`이다.

국가나 어떤 사회집단에서 가장 쉽게 그 구성원이나 국민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은 개혁과 복지다. 기초지식만 가진 사람들이라면 정치인이 아닐지라도 이 두 가지가 행복감의 요소라는 것쯤은 안다. 그렇다 보니 이를 이용해 수많은 통치 이념들이 생겨나고 쇠퇴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진보, 보수 등 모두 이런 인간 개개인의 심리상태 중 만족한 감정 상태인 행복감, 긍지, 사랑 등의 삶의 좋은 조건들에서 자극되는 감정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이념들이다.

한동안 세상을 양분했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제각각 개인의 행복감을 만족시키는 데에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의 존립 격차를 크게 벌인 가장 큰 이유는 욕심과 욕망이었다. 이에 따른 부패와 독재가 완벽한 듯해 보이던 이념의 장점마저도 죄다 갉아먹어버려 폐기되고 말았다. 다수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가 무너지고 사상과 이념이 폐기된 이유는 국민행복추구에서의 실패였다. 이는 독단과 독선에 의한 독재와 그를 지탱하려던 부패가 망쳤다. 이념대로라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국가의 녹을 먹는 이들은 민중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희생을 감수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로 국민행복을 무시한 독재와 부패의 정책은 결국 파국으로 폐기됐다. 결과적으로 어떤 이념과 사상이든 가장 중요한 통치덕목이 `국민의 행복추구`이며, 모두가 지켜내야 할 덕목은 부패청산과 깨끗한 도덕성, 그리고 독선과 독단의 차단을 기초로 한 독재방어다.

지금 우리나라는 진보가 대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진보란 말을 곡해하고 오해하는 경향이 아주 짙다. 하물며 자신이 진보인사라고 자평하는 이들조차도 잘못된 지식의 정치이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진보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적 이념을 뜻하지 않는다. `종북`은 더욱 더 아니다. 진보는 `진취적 개혁`의 다른 말일 뿐이다. 하지만 이 진취적 개혁의 주춧돌은 논리나 이념이 아닌 정의며, 그 힘은 맑은 윤리관과 도덕성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권력의 중심에 있는 진보의 가장 중요한 통치덕목도 합의에 의한 `국민행복추구`여야 한다. 국민의 행복감을 만족시키려면 개혁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개혁 정책을 밀고나가려면, 진보는 그들의 정책에 앞서 정의로움과 순백의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그렇다고 보수라 해서 비도덕적이고 부패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진보와 개혁은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에 그렇다. 진보적 개혁은 그 힘이 도덕성과 정의에서 나온다. 만약 그렇지 못한 토대와 비윤리적 인사가 개혁을 진행한다면 그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옛말대로 공허한 염불이 될 터이니 말이다.

순백은 아닐지라도 도덕성을 갖춘 정의로운 국무위원과 개혁인사를 구성해 환상적인 개혁으로 국민들에게 긍지와 자부심 가득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을 기대해본다. 이제 우리에겐 `희망` 보다는 `행복감`이 필요하다. 강명식 푸른요양병원장·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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