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자력 발전의 원조인 고리원전 1호기가 지난 18일 가동을 멈췄다. 1977년 6월 18일 발전을 시작했으니 정확히 40년만이다. 고리1호기는 당시 국내 총 발전용량의 9%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았다. 그야말로 전력난에 허덕이던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급원이었던 셈이다. 70-80년대 산업이 고도성장을 이룬 배경엔 원전의 역할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리1호기는 30년의 내구연한을 지나 10년이란 기간이 연장됐다. 일부에선 아직도 가동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안전성 문제와 `탈(脫)원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수명을 다하게 됐다. 임무는 끝났지만 완전 해체까지는 또 얼마 만큼의 세월이 걸릴지 모른다.

고리1호기의 가동 중단은 국가 에너지정책의 대대적인 검토와 개편이 불가피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는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며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에너지정책이 `안전과 청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에 30년 이상 된 원전은 고리 2,3호기와 월성 1호기 등 6기나 된다. 이들 역시 고리1호기의 전철을 밟아야 한다. 현재 원전은 국내 발전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다 국내 발전량의 39%를 차지하고 있지만 미세먼지 배출과 대기오염 주범으로 지목된 석탄 화력발전도 점차 가동을 중단하거나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발전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석탄 화력과 원전이 퇴출 수순을 밟는다는 얘기다.

발전비용이 가장 저렴한 원전이 궁지에 몰린 것은 `위험성` 때문이다. 원전은 값싼 전력원임엔 분명하지만 엄청난 재앙의 불씨를 안고 있다. 체르노빌 참사가 그렇고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는 전 세계에 탈원전의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원전을 벗어나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정책으로 가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탈원전을 선언한 나라는 독일 등 몇몇 나라에 불과하다. 후쿠시마 사고이후에도 여전히 새롭게 원전을 건설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참사를 겪은 일본 역시 `원전가동 중단`을 선언했지만 전기료가 20-30% 오르자 최근 원전을 재가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라고 해서 원전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아닐 터이다. 단지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에너지대책을 이끌어내지 못한 탓이다.

위험성은 높지만 싼 원전을 할 것인지, 안전하지만 비싼 신재생을 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다. 어떤 게 옳고 그른지를 논할 사안은 아니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비중은 주요국가중 꼴찌 수준이다. `잠재적인 재생에너지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는 OECD의 지적이 있을 정도다. 이는 정부가 그동안 원전과 석탄화력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선진국에 비해 늦었지만 이제라도 친환경,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정책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전력수급에 차질을 빚을 정도의 급격한 정책변화는 소비자인 국민에게 부담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국민들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정도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원전과 화력에 비해 비싼 발전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하는 것도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정책이 그러하지만 에너지정책 역시 왕도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나라마다 주어진 여건과 상황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탈원전이 옳은 방향이지만 모든 나라가 똑같이 채택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위험을 감내하면서 원전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나라의 국민 모두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에너지정책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정권에 따라 에너지정책이 오락가락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권은 짧지만 에너지정책은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수립해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다. 우리나라도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국민 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에너지정책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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