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대안(天下大安).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 천안을 풀어 쓴 말이다. 조금 거창한 표현으로 `오룡쟁주지세(五龍爭珠之勢)`라는 표현도 쓴다.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놓고 싸우는 형세라는 의미다. 여의주는 `천안`과 `통일`이라는 중의를 갖는다. 고려를 세우기 전 왕건이 지었다. 통일의 성업을 이룰 요충지로 천안을 꼽은 셈이다. 왕건은 이후 후삼국을 통일, 한반도에 고려를 세웠다.

하여 천안은 고려와 연관이 깊다. 이를 증명하듯 천안 곳곳에는 고려의 흔적이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국보 7호 `천안봉선홍경사지 갈기비`를 꼽는다. 왕건의 손자 현종이 1021년 현재 성환읍에 세운 절터다. 갈대가 무성하고 도적이 자주 출몰한 탓에 불법으로 백성을 다스리고자 절 홍경사와 여관 광연통화원을 세웠다. 왕실이 나서 창건한 절이라는 점에서 당시 고려왕조가 천안을 어떻게 여겼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충남 북부 가장 끝에 위치한 까닭에 홍경사터는 삼남을 잇는 관문의 역할도 했다.

하지만 얼마 전 다녀온 홍경사터는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옆 국도 1호선으로 쏜살같이 지나는 차량들만 뿌연 먼지를 흩뿌리고 있었으며 홍경사터를 찾는 이도 없었다. 투박한 안내판을 보기 전까지 이 곳이 국보 7호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인근에서 경작 중이던 한 주민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호해야 하는 천안시도 무관심이다. 2005년 홍경사를 복원하겠다며 정비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발굴조사까지 했던 홍경사터는 이후 사업이 중단돼 12년 째 그대로 방치 중이다. 국보 7호의 쓸쓸한 현주소다.

내년이면 고려가 건국된 지 1100주년을 맞이한다. 천안시는 이에 발 맞춰 천안 내 고려 유적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학술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헌데 홍경사터는 정작 계획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 가장 선두에 서서 지역 문화재를 보전해야 하는 천안시의 행보가 아리송할 따름이다. 4년 뒤인 2021년이면 홍경사는 창건 1000주년을 맞이한다.

천안시는 왕건이 칭한 여의주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재차 고민해봐야 한다. 1100년 간 여의주를 품은 용의 꼬리가 뱀의 꼬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다. 천안아산취재본부 김대욱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