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이(83) 작가는 죽을 때까지 한국 자연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겠다는 소망을 내보였다. 신 작가가 대전 중구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는 제3회 한밭사진사랑전시에 출품한 자신의 작품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은선 기자
신건이(83) 작가는 죽을 때까지 한국 자연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겠다는 소망을 내보였다. 신 작가가 대전 중구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는 제3회 한밭사진사랑전시에 출품한 자신의 작품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은선 기자
주름진 손은 마치 카메라를 쥔 양 끊임없이 움직였다. 사진을 이야기 할 때 그는 사진을 찍고 있는 것처럼 생생히 설명했다. 여든이 넘은 고령의 나이지만 사진을 이야기할 때만은 청년작가였다.

제3회 한밭사랑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대전 중구문화원에서 만난 신건이(83) 사진작가는 "10대 때부터 시작하게 된 사진은 내 삶의 궤적과 함께 하고 있는 동반자"라며 "카메라가 나보다 내 인생을 더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대전·충남사진작가 1호이자 현재 한밭사진사랑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신 작가는 3년 전부터 대전지역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한 데 모은 사진전을 열고 있다. 이 전시는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전지역 사진계 작가들의 유작과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대전 사진계 역사의 현장이다.

신 작가가 처음 카메라를 만진 건 그의 나이 14살 때다. 충남 공주에서 사진관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당시 고가 장비였던 카메라를 맘껏 만질 수 있었다. 스무살쯤 되던 해에는 사진관을 물려받아 직접 운영했다. 그쯤 공주 동학사와 계룡산, 금강 등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관 안에서는 인물만 잡던 렌즈는 사진관 밖에서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얽매이지 않은 자연에 그는 매료됐다. 사진을 업으로 하기엔 배고팠던 그는 충남농촌진흥원, 인쇄소, 대왕칼라 등에서 근무했다. 주말만 되면 그는 4대의 필름카메라를 매고 전국 방방 곡곡을 누볐다. 한국 사진계의 선각자라 불리는 백오 이해선 선생에게 사사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만 현재 1만 여 점에 이른다.

2009년엔 본보 주최로 열린 `금강의 어제와 오늘 사진전`에 그는 1960-70년대의 금강과 그 주변의 모습을 담은 사진 수십점을 제공했다. 아직도 그의 차 안에는 카메라가 있다.

"60년의 사진인생에서 안가본 데가 없다고는 하지만 못찍은 거는 있어요. 죽을 때까지 그들을 다 찍는게 저의 바람입니다."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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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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