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에서 대통령은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여러 대중 매체를 통해 신고리 5, 6호기 향방에 초점을 두고 `사회적 합의`에 많은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지만 필자는 신고리 5, 6호기에 국한해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원자력의 `사회적 합의`에 대한 의의를 살펴보고 싶다.

전문적인 사안에 관한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려면 전문지식에 근거한 판단이 필요하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에 관한 의사결정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전문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전문지식에 관한 개인적 혹은 사회적 판단을 이끌어 내는데 `전문가 위탁`이라는 방법이 많이 이용돼 왔다.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산하에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를 두는 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 위탁` 방법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전문가 위탁`은 전문가 판단이 과학적 지식에 근거하므로 객관성과 중립성을 가지며 과학기술을 조직적, 계획적으로 활용하는데 있어 의사결정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회에서 널리 이용돼 왔다.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의 사회적 의사결정을 하는데 `전문가 위탁`을 광범위하게 사용해 왔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많은 사회적 의사결정이 `전문가 위탁`을 통해 이루어졌다.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소장이었던 핵물리학자 와인버그는 1972년에 `Science and Trans-Science`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과학적으로 논의할 수는 있지만 과학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들"이 있으며, 이를 트랜스-사이언스적 문제들이라 불렀다. 예를 들자면, 저선량피폭 문제, 전자파 문제, 유전자변형식품 문제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런 트랜스-사이언스적 문제들을 다루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서로 엇갈리거나, 다양한 사상과 신념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 심지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전문가의 윤리 문제까지 개입돼 사회적 분규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원자력 안전규제 관점에서 법령에서 요구하는 허가기준과 필요시 규제기관에서 요구한 사항을 충족할 경우 사회에서 합의된 안전수준은 확보됐다고 판단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원자력안전법령은 국제규범이나 다른 선진국의 안전기준에 견줘 손색이 없는 규제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는 2011년과 2014년, 두 차례 행해진 IAEA 통합규제검토서비스와 1999년부터 매 3년마다 IAEA에서 개최되는 원자력안전협약 검토회의 등을 통해서 평가된 바 있다.

현재 원자력의 안전성과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보면 트랜스-사이언스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이런 문제들을 안전규제에서 보수적으로 고려해 판단하지만, 지금 보다 훨씬 안전기준을 강화한다고 해도 "그래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얼마나 안전해야 안전한 것인가" 원자력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화두다. 이제 이 문제를 `전문가 위탁`의 범위를 넘어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함께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사회가 합당한 선택을 하려면, 과학기술 전문가의 역할이 전문지식을 키우는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전문지식을 사회에 알기 쉽게 설명하고 올바르게 판단할 정보를 제공하는 데까지 전문가의 사회적 책임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원자력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사회적 의사결정을 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국내 유일의 원자력 안전규제 전문기관으로 전문성, 독립성, 투명성과 책임성에 핵심가치를 두고 있다. KINS는 핵심가치를 공고히 하면서 `국민에게 신뢰받는 Clean KINS`를 위해 전사적으로 윤리경영체제를 재정비하고 있다. KINS의 윤리경영은 `청렴`을 달성하는데 국한되지 않는다. 국민의 편에서, 그리고 사회적 문맥에서 여러 이해관계자의 입장과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KINS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KINS는 윤리경영을 착실히 진행하는 동시에 사회와 충실히 소통함으로써 원자력의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안전규제 전문기관의 책무를 다해 나갈 것이다. 김인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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