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으면 더 질겨지는 것을 알고 있다

농담에 이어지는 농담

가볍고 엇비슷해 쌓아두기 편한 책들

시청 앞엔 이제 가지 않기로 했다

곱창집 원탁에서 그렇게 선언했고

돌아오는 길에 저지방 우유 한 팩을 샀다

면도를 하고 싶다

비는 이틀째 그치지 않고

빗줄기 사이는 볼수록 넓은 것이어서

모르는 사람들 함께

비를 피할 만큼 넉넉한 틈이 있어서

알맞게 웃으며 우리는 농담을 기다렸다

짖다 만 건물에서 삐져나온 철골

젓가락질 사이로 잠깐씩 바깥을 보았다

비 오는 골목과 비를 보는 사람

창밖을 왕복하는 목선(木船)

그것이 일으키는 자기 차례의 너울

시작한 농담은 그치지 않았다

단맛이 우러나오기를 기다리며

비는 이틀째

한 사람의 구두에서 튄 물방울이

다른 사람의 무릎을 젖게 하고

요즘 몇 십 년만의 가뭄이라 하니. 쩍쩍 갈라진 논밭의 모습은 그대로 농부님들 마음. 그 타들어가는 심정이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여러모로 걱정이 자못 태산이다. 어느 곳에는 급수도 제한해야 한다니 오죽 답답하겠는가. 아침저녁으로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한참씩 들여다본다. 물 한 컵을 받아든 손이 떨리는 듯하다. 기우제를 올린다고 비가 오랴만 옛 분들의 그 지성스런 마음으로는 하늘도 울리고 남을 법하다. 그렇듯 자연과 함께 하려는 정성을 담아낸 것이겠지. 시인은 지금 비에 젖은 마음도 축축해져 있다. 그러니 반전을 꾀하려고 농담을 기다릴 법도 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농담을 던질 여유도 없다. 진담만이 비를 감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발 비좀 와라. 아니 비좀 오시라. 빗님 어서 어서 오셔요. 우리 부모님 `비가 오신다`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러니 있을 때 잘 하라하지 않던가. 이 시에는 비가 이틀째 온다. 하여 젖은 시간 속에 시인의 정서 또한 매우 멜랑콜리하다. 빗님. 이틀 아니라 하루라도 오소서. 아니면 반나절이라도 쉬지 않고 퍼부어주소서. 이 간절히 드리는 기우제의 마음을 널리 널리 헤아려주소서. 아, 창밖에 비가 오네!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