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旱魃)은 오래도록 계속해서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바싹 마르는 상태를 뜻한다. 가뭄을 주관하는 신을 말하기도 한다.

고대 중국의 산과 바다에 나오는 풍물을 기록한 책 산해경(山海經)에는 한발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나온다. 중국 기원 설화에 등장하는 삼황오제 중 하나인 황제가 중원의 패권을 두고 치우와 전쟁을 벌였다. 치우는 바람을 부리는 풍백과 비를 내리게 하는 우사를 내세워 황제를 공격했고 황제는 태양의 힘을 갖고 있는 발(魃)을 하늘에서 불러 이를 막았다. 전쟁이 끝난 후 발은 하늘로 다시 올라가지 못했고 그가 있는 곳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들이 고통받게 됐다. 결국 발은 적수 북쪽 오지로 유폐된다. 외로움에 못 이긴 발이 때로 도망쳐 나오려 하면 사람들은 "신이여, 북쪽으로 가시오"하고 외쳤다고 한다.

태평성대일 것만 같은 세종대왕 때도 한발은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재위 기간 32년여 중 약 16%에 해당하는 다섯 해에, 상당히 심각한 가뭄과 그에 따른 흉작이 발생했다. 특히 세종 18년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가뭄이 들었다. 4월 중순부터 시작된 기우제가 7월 말까지 계속됐다고 기록됐다. 기우제를 그만 둔 것도 가뭄이 해소돼서라기보다는 이미 비가 내려도 흉작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해 10월에는 "지금 기근으로 떠도는 백성이 어린 아이를 버리고 가고 마을 사람도 또한 보호해서 기르지 않으므로 굶주려 죽는 사람이 있다"는 보고가 조정에 올라오기도 했다. 충청도에서 보고된 아사자수만 25명에 이르렀다. 실제 숫자는 더욱 많았으리라.

요즘 같은 시대에 가뭄 때문에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일부 지역에선 식수난을 겪을 정도로 한발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주말 비소식이 있었지만 한발을 돌려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7월에도 큰 비가 내리긴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동양에서는 만물을 주재하는 요소로 삼재(三才), 즉 하늘·땅·사람(天地人) 3가지를 꼽는다. 다행히 극심한 가뭄에도 전국 다목적댐 평균 저수율(36.3%)은 평년(35%)의 104%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천시(天時)가 여의치 않지만 지리(地利)는 어느 정도 얻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인화(人和)에 힘을 쏟아야 한다. 진인사대천명. "돌아가 주시오" 발에게 말하기 전 한정된 자원을 요긴하게 쓰는 사람의 지혜를 다할 때다.

취재2부 차장 이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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