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 종편 TV에서 방영 중인 `쓸데없는 지식`을 앞세운 인문학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과거 다른 인문학을 주제로 했던 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어떤 특정주제를 정해 놓고 인문학자가 강연이나 대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타의 인문학 프로그램이 대상을 정해 놓고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고 하면, 이 프로그램은 어떤 지역에 가서 출연자들이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그 여행에서 느낀 점들을 자유롭게 대화하는 방식이다. 또한 출연자들 역시 인문학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고, 인문학 교양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예능인 점도 다르다.

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마디로 `파격`이다. 프로그램이 분명히 예능이지만, 예능이 아니라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전제로 하고 있고, 주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분명히 있고, 그렇다고 분명한 결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학자로서 그 동안 학문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우리는 얼마나 `재미없는 학문`을 해 온 것이 아닌가 라는 점이다.

인문학은 흔히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로부터 철학, 역사학을 비롯해 인문적 사고와 상상력을 중시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탐구의 결과가 인문학을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동력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것이 내면적으로 심오하고 정말 `재미`있는 탐구의 과정과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는 있지만, 외면적으로 일반인에게 얼마 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 동안 인문학을 하면서 독자나 일반인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학문을 스스로 하는 것, 그래서 별다른 `재미가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특성이라고 치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재미`가 없는 것은 어쩌면 `의무` 또는 `사명`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재미가 있는 것`은 결코 의무나 사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동력에 의해 스스로 해 나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 동안 인문학은 아마도 많은 부분이 스스로에게는 재미있는 것일 수 있으나, 보는 사람에게는 `재미없는 것`으로 돼 버렸고 그래서 우리에게 외면 받은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흔히 인문학이 없는 사회는 상상력이 없는 사회, 미래가 없는 사회라는 말을 한다. 인문학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또 과거의 역사를 기초로 현재를 보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문학이 주로 인간의 내면과 우리의 역사와 문학적 소양을 다루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간들이 구성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사회와 사회를 바라보고 연구하는 사회과학은 어떤가.

그래도 그나마 인문학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인문학에 대한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인식은 점점 더 외면과 무관심과 더 나아가 혐오로 변해가는 것만 같다.

사회과학의 주요한 내용이 되는 정치와 경제가 그렇고 복지와 노동과 교육 등 사회과학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부분들이 어느 하나 시원한 것이 없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미는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에게 사회과학에 대한 `재미`는 불구하고 `무용론`과 혐오가 팽배하게 되는 이유로 작용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그리고 그 삶들이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다루는 사회과학은 사실 인문학의 재미만큼이나 재미있고 생동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 앞에 보이는 정치현실과 경제상황, 안보와 국방 등 사회현상은 우리로부터 사회를 더 멀게 만들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되고 말았을까.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 것일까. 인간 내면과 역사와 철학을 다루는 인문학과 그 인문학을 기초로 우리와 우리 사회를 다루는 사회과학의 의미와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자발적인 `재미`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우리의 상상력을 살리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능하게 할 동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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