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은 24절기 중 하나인 하지였다. 우리는 보통 하지라고 하면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천문현상의 하나로 이해하고 있지만 농경사회에서 24절기라는 것은 농사일의 기준이 되는 `농사달력`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는 장마와 겹치게 되므로 모내기를 한 후 하지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기우제는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민간의 주술적인 풍습에서부터 임금이 주관하는 국가의 공식 제례까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강우를 기원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관개 수리시설의 발달로 지금은 거의 소멸된 줄 알았던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특히 가뭄의 피해가 극심한 충남 서부 지역에서는 자치단체장들까지 나서 기우제를 올리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곤 하는데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지금 시대에 기우제를 지낸다고 오지 않을 비가 올 리는 없겠지만 그만큼 이번 가뭄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올해 전국 평균 강수량은 155㎜로 예년의 60%에 불과하고 충남 서부지역은 올 봄 들어 비다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에서는 2015년 이후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가뭄에 대비해 선제적 가뭄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충남도를 비롯한 6개 도 18개 시·군에 대해 관정 개발, 간이양수장 설치, 저수지 물 채우기 등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가뭄의 확산 정도에 따라 가뭄 대책비를 신속히 지원하고 하천수 등 가용 수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 가뭄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추가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장맛비가 내리지 않는 한 해갈은 어려운 상황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비가 내리는 원리를 알게 되었고 인공적으로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있다. 최초의 인공강우 실험은 1946년 미국에서 성공하였고 그 후 러시아 일본, 중국 등지에서 연구하고 있지만 특정한 목적을 위한 실험 수준이지 경제적 실용성은 거의 없다. 아직까지 강수라는 자연현상을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한다.

기우제는 농업이 국가의 기반이었던 전통사회에서 국가적 재앙인 가뭄을 극복하려는 집단적 상상력의 총 결집이었을 것이다. 기우제를 지내고 나서 우연히 장마전선이 북상하여 비가 내릴 수는 있지만 기우제 덕분에 비가 내렸다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우제를 미신적 행위라고 폄훼할 필요는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우제를 지내는 농업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가뭄 극복을 위하여 마음을 모으면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기우제라도 지내겠는가. 김기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남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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