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도시재생]

1920년대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대전 동구 소제동 철도관사촌 전경. 사진=대전시 제공
1920년대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대전 동구 소제동 철도관사촌 전경. 사진=대전시 제공
대전역 동광장 너머 동쪽으로 나 있는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래된 가옥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반짝이는 솔랑산길`이라는 의미를 가진 `솔랑시울길`로 불리기도 하는 소제동 철도관사촌이다. 소제동은 그 옛날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대전의 변천과 역사적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는 대전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소제동에는 과거 `소제호(蘇堤湖)`라 불리는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는데, 중국 소주(蘇州)의 빼어난 호수와 견줄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었다. 또 소제호 주변에는 소제, 솔랑이로 불렸던 전통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제는 소제호, 솔랑이는 솔랑산(率朗山)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후 1907년 솔랑산에 `태신궁(太神宮)`이라는 일본 신사(神社)가 건립되고 난 뒤 1920년대부터 들어선 철도관사촌, 1927년 소제호 매립 등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오랜 시간 전통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소제동은 점차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현재 소제동 철도 관사촌에서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은 적들이 만들어 놓은 집, 이른바 `적산(敵産)가옥`이라 불리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당시 철도 관사촌은 대전역 동쪽의 소제동과 삼성동 일부에 걸쳐 조성됐는데,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철도관사촌 중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그동안 내부는 많은 부분이 훼손됐지만, 외형은 비교적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 경우가 많아 건축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남 관사촌과 북 관사촌은 1910년대 이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그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소제동에 위치하고 있는 동 관사촌은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관련 자료를 토대로 1920-1930년대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소제동의 문화자산은 옛 철도관사와 같이 건축물 자산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골목길, 경관(하천)이나 구조물 등 기반시설과 같이 소제동을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에게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지금 소제동은 철도박물관 계획부지 등 인근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포함한 대전역세권 재정비 촉진 계획에 따른 역사문화 자산의 멸실이라는 위기 앞에 놓여 있다. 2000년대 이후 급격히 발전하는 신도시와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는 대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잠재적 역량을 갖고 있는 소제동의 도시정비사업 추진은 꼭 필요하다. 현재 추진 중인 주거환경개선사업과 더불어 문화(관광) 주도형 도시재생이 이뤄진다면 소제동은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시민들이 향유할 수 공간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박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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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구 소제동에 자리 잡고 있는 철도관사촌 골목길 모습. 대전의 변천과 역사적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사진=대전시 제공
대전 동구 소제동에 자리 잡고 있는 철도관사촌 골목길 모습. 대전의 변천과 역사적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사진=대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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