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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이 못다이룬 중흥의 꿈, 창왕명 석조사리담에 글귀로 남아

2017-06-20기사 편집 2017-06-20 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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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살아있다]

첨부사진1금동관음보살입상
◇국립부여박물관의 대표 유적

국립부여박물관에는 국보 2점, 보물 3점을 비롯해 2만점이 넘는 유물이 보관돼 있다.

그중 백제금동대향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 사택지적비, 금동관음보살입상, 광배 등이 대표하는 유물들이다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에 능산리사지의 공방지에서 출토됐다. 이 곳은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어 왕실 의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백제금동대향로는 한 마리의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 몸체의 하부를 물고 있는 받침과 연잎으로 표현된 향로 몸통, 중첩된 사악으로 묘사된 뚜껑 등으로 이뤄져 있다. 뚜껑 정상에는 날개를 활짝 핀 한 마리의 봉황이 장식돼 있다. 뚜껑에는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는 주악상이 상단에 있으며, 산봉우리 사이에는 참선하거나 낚시하는 사람, 수렵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상, 호랑이와 코끼리, 사람 얼굴에 새 몸 또는 동물의 몸을 한 신령스런 동물 등 각종 상서로운 동물도 표현되어 있어 현실 세계가 아닌 신선들의 세계를 묘사했다. 받침은 뚜껑의 산악을 향해 용트림하는 역동적인 자세의 용을 표현했다.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은 능사리사지 목탑지 심초석 하부에서 발견됐다. 앞면에 '百濟昌王十三秊太歲在, 丁亥妹公主供養舍利'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백제 창왕 13년 정해년에 (왕의) 누이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고 해석된다.

확인된 명문으로 능산리 사찰이 백제창왕 13년(567)에 왕실 주도 하에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절을 세워 아버지(성왕)의 넋을 기리고 불교를 통해 성왕이 이루지 못한 백제중흥의 꿈을 실현코자 하였던 창왕(위덕왕)의 간절한 염원을 짐작케 한다.

사택지적비는 화강암을 잘 갈고 네모칸을 친 뒤, 세련된 해서로 비문을 새겼는데, 지금은 56자만 남아 있다.

보물 제293호 금동관음보살입상은 머리에 작은 부처가 새겨진 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손을 어깨 높이로 올려 작은 보주를 잡고 있는 독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일 듯 말 듯한 부드러운 미소와 균형이 잘 잡힌 유연한 곡선미가 엿보여 우아하며 세련된 백제 불교조각의 미적 감각을 잘 보여준다.

한남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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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백제금동대향로
첨부사진3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
첨부사진4사택지적비
첨부사진5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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