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영어 조기교육에 절대 반대합니다. 한국말을 잘 해야 영어도 잘 하는 거지, 한국말을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무슨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는지, 다 쓸 데 없는 짓이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단어 몇 개 가르친다고 그게 영어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영어유치원 나온 아이들이 초등학교 가면 일반 유치원 다녔던 아이들보다 모든 면에서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어렸을 때 언어의 혼란이 와서 부작용이 난 거라고 봅니다."

지난 주 한 미팅 자리에서 유치원과 초등학생 자녀를 둔 아버님이 `영어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는 필자의 이야기에 절대로 찬성할 수 없다며 한 이야기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이런 의지로 두 아이 모두 영어노출을 전혀 시키지 않았는데,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아내의 성화에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큰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월 30만 원에 달하는 수강료를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단다. 또 자신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영어를 처음으로 접했고, 모 유명출판사의 책을 독학하며 영어의 기초를 단숨에 터득할 수 있었다면서 영어는 `조기교육`이 아니라, 모국어의 언어사고력이 확실하게 자리 잡은 이후의 `적기교육`이 훨씬 더 효과적임을 강조했다.

영어를 하나의 과목으로 본다면 아마 아버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맞는지도 모른다. 필자 또한 영어를 중학교에 가서 처음으로 접했다. 대학 입시에서 만점을 맞을 정도로 영어성적이 우수했지만 막상 유학 가서 말 한마디도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정말 피나는 노력으로 미친 듯이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뒤 어느 정도 성공한 영어교육 종사자가 되었지만 미국인 가정에 저녁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여전히 어색함에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반대로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딸 아이는 온전히 즐기며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이런 고백이 비단 나만의 부끄러운 고백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적어도 영어를 자연스럽고 유용하게 써 먹었을 수 있게 배우고 싶다면 조금 생각을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어를 바라보는 관점과 목적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절실히 느꼈던 것은 바로 `영어그릇`이다. 학부모 교육에서 늘 강조하는 말이기도 한데 이것은 단순히 단어 몇 개를 더 알고, 책을 유창하게 읽고, 문장을 빠르게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을 보는 눈, 삶을 대하는 태도, 우리 주변에서만 보고 접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 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일들에 대한 지식과 수용능력, 또 이러한 것 들의 끊임 없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순발력이 중요하다. 이런 능력은 영어를 학습이 아닌 문화를 담은 언어로 자연스럽게 습득한 아이에게는 참으로 자연스럽게 내재돼 일어난다는 점을 현장에서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다. 영어를 학습으로 배운 아이와 영어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하고 싶은 것을 한 아이와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 `영어그릇`이라는 것이 일주일에 몇 시간, 아주 유능한 영어교사를 만나게 해 준 다고 금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편안한 마음에서의 꾸준한 노출, 세상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왕성할 때 던져줘야 커진다. 부담 없이 픽업된 지식과 정보들, 재미있는 만화를 보면서 깔깔대고 웃으면서 들었던 노래, 주인공의 대사들,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서 읽고 들었던 동화책 주인공들의 모습과 말들, 여행을 통해 보고 들은 그들의 생활, 이런 것 들이 하나 하나 모여서 만들어지는 터전인 것이다. 또 이 터전을 가장 잘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이와 가장 오래 있고,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엄마, 아빠, 가족들일 것이다. 여기에 바로 `적기교육`이 온전하게 적용될 수 있다. 아버님이 말씀하셨던 `적기교육`이란 아이의 나이와 특성, 취미, 호기심을 잘 관찰하여 그에 맞는 교육, 아이의 뇌 발달 과정에 맞추어 제 때에 하는 교육을 말한다. 모든 교육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교육이 곧 학습이고, 학습은 단순히 삶에 유용한 지식을 최대한 많이 가르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우리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그릇을 키워 놓은 아이가 그릇에 다양한 자신의 삶에 유용한 것 들을 채워나가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릇이 작은 아이가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채워 넣는 일은 버겁고 어색하고, 힘들기만 하다. 그러기에 한국어를 잘해야 영어도 잘한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언어(영어)그릇을 키우는 일은 어쩌면 모든 학습의 기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교육의 기본은 가정에서 이루어짐을 잊지 말고, 아이와 끊임 없이 소통하는 수다쟁이 부모가 되어 보자!

㈜아이아리랑대표 Susan Hong(홍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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