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67년, 말더듬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좋은 스승 플라톤을 만난 덕에 지금까지 서양 문화의 꽃이 시들지 않고 있다. 그렇게 훌륭한 제자를 둔 플라톤은 자신 또한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배웠다.

소크라테스는 저명한 사람들을 찾아가 소 잔등에 붙은 등에처럼 귀찮게 질문을 퍼부었다. 제대로 답을 주지 못한 사람들은 그가 교묘한 말장난이나 한다고 비난했다. 그의 제자 중에는 플라톤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하도록 만든 배신자 알키비아데스도 있고, 이후 과두정의 폭권을 휘둘러 국민을 괴롭혔던 나쁜 정치가도 있었다. 그런 것이, 소크라테스가 신을 모독하고 젊은이를 선동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말 같지 않은 이유로 그를 법정에 세우게 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사형을 언도 받은 그의 탈옥을 도우려 친구와 지인들이 노력했지만, 그는 완강히 거절하고 조용하고 침착하게 독이 든 약을 마셨다. 죽기 직전 소크라테스는 친구 크리톤에게 말했다고 한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을 한 마리 빚졌으니 꼭 갚아달라고.

세계사를 보면, 민주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조차 무시하고 사욕을 향해 치달았던 부당한 정치가가 많았다. 그에 맞서 싸운 사람들 대다수가 알게 모르게 테러를 당하거나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졌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법이 그들 세상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말로만 법을 내세워 힘을 가로챈 자의 억지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아 국민들은 오래도록 입을 다물고 옷에 피를 묻혔을 것이다.

2017년 봄, 우리는 세계 역사상 유래가 드문 정권교체의 사례를 보여주었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사욕을 가진 권력은 절대 정당할 수 없다는 것을. 권력은 시효가 있다. 그런데 부당한 권력은 힘이 있을 때 애써 정당성을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쥐어준 권력의 칼을 마음껏 휘두른 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들이 주장하는 정당성의 거짓을 제대로 밝혀야만 이 역사는 바로 선다. 거꾸로, 만약 그들에게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소크라테스의 변명`처럼 후대에게 멋진 변론의 감회가 남을 것이다. 새 정권은 거짓말하지 않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권력의 뒷방에서 `촛불의 의미가 무엇인지, 보수 혹은 진보의 의미가 정녕 무엇인지` 끝까지 모른 척하는 자들의, 깊이 있는 생각과 좋은 변론을 기대한다. 연용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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