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 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배를 밀어보는 것만 어찌 드문 경험이겠는가만. 배를 미는 순간 그 아슬아슬한 감정의 우듬지를 바라보는 건 필시 드문 경험일 것. 힘이 미치는 한계까지 온 힘 다해 배를 밀고 그 허공으로부터 손을 거두는 때. 그리고 우리 삶 모든 것이 이렇게 배를 미는 것 같다고 깨닫는 그 순간. 어둠 속으로 화약이 번지듯 환해지는 경험이라니. 모든 것들은 허공으로 떠나고 또 허공으로부터 비롯하지 않던가. 그렇게 우리는 슬픔도 아픔도 밀어버리지. 그러나 배 떠난 물 위 흉터도 잠시. 배는 우리 힘에 의해 물을 밀고 간 게 아니라. 우리 가슴을 훑고 간 게 분명해.

배를 밀어내 서해 노을 속으로 가라앉은 하루 보며 손 털고 돌아서는 순간. 저려오는 명치끝을 수평선 위에 올려놓고 허공을 보는 바로 그 찰라. 어두워져 더는 바라볼 게 없는 하늘로 별 하나 반짝하고 켜지는 그 시각. 그 배는 외려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안기는 것이니. 밀어내려 하면 할수록 안으로 더 강하게 앵겨드는 눈매. 떨치려 할수록 더 강하게 파고드는 만조의 해조음. 밤 고깃배 뱃전마다 불빛 꽃처럼 피어나고. 나는 내가 밀어낸 배에 밀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느니. 결국 나는 배를 내 안으로 깊이 밀어 넣은 것.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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