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 회의가 열린 청와대 여민1관 3층 소회의실. 회의 시작 10분 전부터 참석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는데, 모두 넥타이를 메지 않은 와이셔츠 차림이다. 마지막으로 입장한 문재인 대통령이 양복 상의를 직접 벗어 의자에 걸쳐 놓았는데 역시 노타이다. 티테이블 쪽에 있던 임종석 비서실장이 "오늘은 제가 커피 배달하겠습니다"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고, 문 대통령도 미소를 머금은 채 티테이블로 가 직접 커피를 내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문 대통령이 "다들 오셨습니까?"며 좌우 참석자들을 둘러보자 누군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을 찾았고, 이를 눈치 챈 윤 수석이 "여기 있습니다"고 대답하자, 조현옥 인사수석은 "출석 부르네, 출석"이라고 말해 또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부터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탈권위 행보가 연일 화제다. 미리 준비해온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참석자들은 이를 받아쓰는 그런 회의 풍경은 아예 사라졌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채 참모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담소를 나누고, 구내식당에서 3000원짜리 식사를 직원들과 함께하는 대통령이다.

낮은 자세로 소통을 시도하는 노력도 신선하다. 당선 이후 곧바로 야당 지도부를 방문한데 이어, 청문회 및 추경 정국을 맞아 또 다시 국회를 방문했을 때도 국회의장은 물론 여야 원내대표들과 직접 회동을 했다. 일자리 추경이 시급하다고 판단되자 이례적인 시정연설에 나섰고, 슬라이드 자료까지 동원해 30여 분 동안 직접 일자리 추경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 정권의 권위적 행태와 대비되는 이러한 행보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했다. 쾌조의 스타트 덕에 대통령의 인기가 아이돌 스타 못지않다. 청와대 춘추관 앞 커피숍의 풍경도 바꿔놓았다. 청와대 관계자나 언론인들만이 주로 찾았으나, 새 정부 출범 후 문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느끼고자 산책 나온 고객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커피숍 종업원은 귀띔했다. 언론인들이 상주하는 춘추관 풍경도 변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주요 참모진들이 수시로 찾아온다. 북핵과 사드, 내각 인사 등 대형 이슈가 생기면 해당 수석들이 공식 브리핑 또는 비공식 간담회 등을 통해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해주는데 적극적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춘추관에 오자 "깜짝 방문, 왜?"라는 식으로 보도됐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그 자체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 야당과의 갈등구도는 여전하다는 점이다. 물론 어찌 청와대만의 책임이랴. 야권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내각 및 청와대 보좌진 인선 대다수에 대해 비판하며, 11조 원 규모의 추경안에 대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국민 대다수를 제대로 납득시키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되레 중구난방식 비판만을 거듭하는 모양새로 비쳐지면서 새 정부 발목잡기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협치의 틀이 깨진다면 최종적인 책임은 정부와 여당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로 인한 폐해를 국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가경영을 책임져야 하는 청와대에서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보다 파국만은 막아야 하는 게 1차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현재 청와대와 야당 간 갈등 사태는 폭풍전야에 휩싸인 듯한 분위기이다. 청와대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임명을 강행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국회에 강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을 다시 요청했고,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명분으로 강행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에 한국당은 물론 다른 야당들까지도 강경 대응태세에 돌입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적인 권한을 행사하는데 있어 협박에 굴복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 협치 전망이 더욱 어두워지는 형국이다.

할 일은 많은데, 초대 내각 구성부터 제대로 풀리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국회와의 협치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확 달라진 청와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을 최우선 시한다면 또 다른 해법이나 협치 방식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송충원 서울지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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