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80%를 넘나드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본인이 공언했던 인사원칙 위배와 코드인사 논란으로 야당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지만 좀처럼 기세가 꺾일 줄을 모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율도 50%를 상회하고 있다. 9년여 만의 진보정권에 대한 지지도는 문 대통령이 견인하고 있다. 취임 한 달 남짓, 그가 보여준 적극적 소통 행보와 소탈한 이미지는 국민들의 감성을 일깨웠다. 무엇보다 새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국민적 기대와 염원이 뒷받침된 결과다. 반면에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등 보수정당은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문정국을 통해 대통령과 여당에 각을 세우고 있지만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이 약해 보인다. 아직 야성(野性)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국민의 절반에 달하는 보수층을 아우를 가치와 비전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보수정당의 몰락은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자초한 것이다. 단초는 20대 총선 공천의 계파싸움이다. 친박(친박근혜계)과 비박의 이전투구는 총선 패배를 초래했고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은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졌다. 그 여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고 조기 대선에서 역대 최다표차의 참패를 맛봐야 했다. 보수정당의 몰락은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다. 보수정권은 지난 9년 동안 나가도 너무 잘 나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여당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과반의 국회의석을 차지하는 등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게 독이었다. 힘이 넘치다보니 보수가 지녀야 할 도덕적 품격과 절제력을 상실했다. 속내를 파고들어가니 악취가 진동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매개로 한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이나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충성스런 보수층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만든 결정타였다.

문제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분당 전의 새누리당은 몇 차례 쇄신의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4·13 총선 직후 김영우 황영철 하태경 의원 등을 중심으로 새누리 혁신모임을 구성했으나 친박계의 견제와 압박으로 무산됐다. 이후 인명진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3정(정치·정당·정책) 혁신을 꾀했지만 대표적 친박계 3명에 대한 당원권 정지에 그치고 말았다. 책임을 지는 것은 고사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중진과 친박계의 비협조로 당명을 한국당으로 바꾼 것이 고작이다. 이후의 일이지만 새누리 혁신모임을 이끌었던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고 바른정당으로 갈라져 나갔다. 혁신의 움직임을 거부한 결과 박근혜 정부와 친박계의 몰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한국당의 지금 사정도 전신인 새누리당의 당시 상황과 비슷하다. 대선 패배는 불가항력이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당 지도부와 후보는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였어야 한다. 그러나 친박계와 중진들이 기득권에 안주하고 소장파들은 침묵하고 있다. 반성과 책임감의 결여는 지지세력을 잃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의 지지율이 15%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럼에도 내달 3일 전당대회를 갖는 한국당의 당권 후보들은 박근혜 정부 실정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 거명되고 있다. 이래서는 보수정당의 맏형을 자임하는 한국당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보수정당들이 등을 돌린 지지층을 다시 끌어안기 위해서는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비전을 보이는 일이 중요하다. 그 첫 번째 과제는 인적쇄신이다. 시대가 변한 만큼 이를 성찰할 인물들로 세대교체를 이뤄내야 한다. 보수는 수구가 아니다. 언제까지 종북타령과 지역색에 기댈 수는 없는 일이다. 합리적이고 정책적·이념적으로 유연성을 갖춘 인물들을 영입, 지평을 넓히는 일도 필요하다. 이제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수권능력을 갖춘 야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나, 국민의 피로감이 몰려올 때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부터 쇄신과 혁신에 나서길 바란다. 그래야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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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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