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래 인류는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호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전쟁과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고 있다. 핵무기의 발달은 평화를 보장해 주는 것 같지만 언제 파멸될지 모르는 전대미문의 공포 속에서 살도록 하고 있다. 산업의 발달은 풍요한 사회를 건설한다고 생각되지만 그 대가는 엄청나다. 환경은 오염되고, 자원은 고갈되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경제성장과 산업의 고도화는 복지사회를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수반되는 공해와 자원고갈과 에너지의 부족과 국제간의 정치적, 군사적 마찰과 불균형은 지구를 더 황폐화 시키고 있다. 특히 선진국들이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 놓은 산업화를 한국은 한 세대동안 빠른 속도로 진행시켜 왔기 때문에 전통적 가치와 규범이 크게 악화돼 왔고 또 한편으로는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가치와 규범의 방향이 정립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태에 처해있다. 오늘날의 우리 국민은 사회변동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아노미 즉, 가치와 규범이 불확실성과 이에 따라 확산되는 이기주의와 소외의식에 젖어 들면서 혼란스러움과 불안함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처럼 다종교적인 입장에서 각 종교들이 제각기 편견을 가진 주장을 함으로써 사회문제에 다같이 동참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처럼 종교적 휴일을 많이 지내는 나라도 없다고 한다. 먼저 한국에는 크리스마스, 부처님오신날, 개천일 등이 있다. 또한 설날이 그렇고 추석이 그렇다. 이처럼 종교의 다양한 문화가치관계가 우리의 국가적 공휴일로 표현된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한국의 다른 종교들 역시 각각 그들의 종교적 경축일을 국가적 공휴일로 지켜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서로 이질적인 가치관계들이 모여서 우리 사회의 기본구조를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계속해서 새로운 가치관계가 수용되고 자체 내에서 형성되는 매우 활동적인 다원가치내지 다종교 상황이라는 점을 뜻한다.

지난 한 세대동안의 근대화과정에서 몇몇의 주요 종교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종교들이 양적성장을 거듭해 온 것은 한국사회의 급격한 불균형적 경제성장과 겉잡을 수 없는 속도의 사회변천과정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교의 세속화과정과도 연결되는 문제인데, 최근에 와서 거의 모든 종교들이 속세에서의 물리적 성공을 주요 가치로 인정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것을 은근히 부추겨 왔기 때문에 한국의 각종 종교들이 그동안에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해 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한국종교들의 세속화 성향이 바로 전통적인 종교의 본질이나 그것의 기본적인 기능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의 본질적인 속성이나 기능이 어떠해야 하는 가치판단의 문제를 우선 제쳐 놓으면, 확실히 한국의 종교들이 세속화의 물결에 부응해서 누구나 부를 최대한으로 축적하기를 부추기면서 각 개인이 노력해서 획득한 재화의 일부를 헌납받아 신도들과 함께 살쪄온 것도 사실이다.

종교신앙이 요구되는 곳에는 반드시 고뇌와 불안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유물론자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종교가 비판을 받는 것은 종교가 그 사회의 객관적인 주위환경을 개선시키는데 관심을 두지 않고 주관적인 마음만을 대상으로 해 비참하게 처한 자에게도 만족감을 주는 것 같은 주관적인 마음가짐만을 말하고 객관적인 환경이나 사회조건의 개선은 태만히 한데 있다. 그러나 종교는 고유한 가르침에 의해 다른 세계관, 인생관을 지니게 함으로써 주관적인 마음가짐의 변화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과 사회조건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

만약 어떤 종교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지탄받아야 할 것 이다. 다른 종교는 반드시 신앙의 깊이에 따라서 객관적인 사회조건도 개혁하도록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의 현실은 전생의 업인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죽도록 고생하고 죽어서 극락이나 가라고 하는 식의 종교라면 이제 더 이상 그 종교는 발붙일 곳을 잃게 될 것이다.

현재 인간사회는 선이 쇠해지고 악이 강해져서 인륜이 파괴되고 사회가 혼탁하며 우리는 그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이러한 사회를 각 종교는 선이 강해지고 악이 쇠퇴해지도록 종교심을 발휘해 인간의 삶이 풍요롭고 사회가 안락하고 세계가 평화롭게 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석준 스님 대전불교사암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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