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에는 `악마의 맷돌`이 돌고 있다. 인류의 행복을 기약한 18세기 산업혁명이 행복은커녕, 과열된 경쟁과 빈부격차로 피폐해진 대립사회를 빗댄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이다.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산업사회에서 민주제도의 기반은 닦았지만 후속적인 새로운 사회문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지 못해 2만 달러 시대에 멈춰 있다. 산업혁명 후 영국사회의 빈부갈등과 민주화의 혼란시대와 유사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공통의 가치관 없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양단으로 나뉘어 상반된 가치로 대립된 이분법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처럼 이분법사회는 국민 각자의 처한 입장에 따라, 국론과 개인의 가치가 흑백논리에 의해 피아로 대립되고, 진실과 정의가 모순 대립되므로 올바른 사회가치관이 존립할 수 없다. 사실 근본원인은 민주화과정에서 진보와 보수의 이념대립보다는 그보다 먼저 시작된 영·호남의 지역패권에 기반 한 잘못된 정치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국가 안보가 취약한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산업 의존도가 높은 인재중심사회다. 그래서 현실적 합리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보수의 가치와 이상을 지향하는 진보의 가치가 모두 중요하다. 선진국처럼 정치가 발전된 국가는 사회를 지탱하는 확고한 도덕적 가치를 기반으로 다양성을 통합하는 다분법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가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관으로 정의 사회를 만들어간다. 북한의 핵무기까지 지지하는 잘못된 안보관, 노사의 극한대립으로 파멸하는 기업, 한없이 벌어지는 소득격차와 자살률 세계 1위의 복지사각지대, 한번 일류 대학 입학이 평생출세 보장하는 학벌주의, 지속되는 권력의 부패가 이분법사회가 만들어낸 적폐들이다. 이를 극복하고 경쟁력 있는 산업, 튼튼한 국방, 공정하고 안정된 미래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어느 사회든 법보다 그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가치를 기반으로 한 윤리와 도덕의 힘으로 지탱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국가는 양극적 가치대립인 이분법사회를 경계하고 중용의 가치인 도덕이 법보다 우선하는 다양성이 보장된 다분법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보면 "용기는 비겁함과 만용의 중용이고 배려는 낭비와 인색의 중용이고 겸손은 수줍음과 몰염치의 중용"이라 하였다. 이처럼 도덕은 양극으로 대립된 가치가 아니라 100%의 선과 악의 구분이 없는 연속성의 시공(時空)상에 존재하는 중용의 가치다. 그래서 도덕사회는 다양한 가치가 존중받는 다분법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마이클 샌들 교수는 "정의(正義)는 개인의 자유, 미덕, 그리고 공익이념과 그 실천을 뜻하지만 이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공통적 사회가치에 의해 구체화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정의는 언제나 같은 것이 아니라 다분법시대에서 형성된 공통적 가치들에 의한 시대함수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분법의 대립사회를 극복하고 타협과 소통으로 국민통합이 가능한 다분법사회로 발전되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가 오늘처럼 이분법사회로 변한 것은 정치의 책임이 크다, 동서의 지역대립, 빈부의 계층대립, 노소의 세대 간 대립, 좌우의 이념대립, 학벌에 의한 신분대립에 이르기까지 대립을 해소해야 할 한국정치가 그동안 갈등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또 한 번의 큰 정치혼란을 겪고 새 대통령을 뽑았다. 이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정의롭고, 공정한 선진시민사회를 만드는 것은 국가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과제다.

`대립에서 통합으로 가는 사회`는 온 국민이 새 정부에 거는 기대이고 염원이다. 이제부터 정치가 바로서야 한다. 막스 베버가 말한 것처럼 "정치란 악마의 권력수단으로 천사의 대의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대다수국민의 뜻과 관계없이 극소수의 선동주의자들의 그럴듯한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양극의 대립사회로 빠져드는 `악마의 맷돌을 돌리는 저주의 굿판`을 거둬내고 정의롭고 공정한 다분법사회를 만들어 온 국민이 행복해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원묵 한밭대학교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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